“세상살이가 영 할 수 없이 딱해 못 견디겠거든 자연을 바짝 가까이해라. 신라 화랑들이 할 수 없을 때 마지막 힘을 얻은 곳도 바로 여기고, 사실은 중국이 오래 대국 노릇을 해 온 것도 노자를 비롯해서 인도에서 꾸어 온 석가모니를 통해서까지 이 자연과의 융화를 통한 설득력을 성취한 때문으로 안다. 자연과 딱 합해져서 풍운이요, 뇌성이요, 벼락이라면 이보다 더 수승한 힘이 어디 있겠느냐.”
![]() |
탁월한 언어 운용으로 한국 시의 새로운 지평을 연 미당 서정주. 그는 생전에 발표한 산문에서 “나는 어떤 평가들이 말하는 그런 샤머니스트는 아니고, 말하자면 한 ‘신라주의자’에 불과하다”고 시의 뿌리를 밝혔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일제강점기 말기에 친일 시를 쓰고 5공화국 초기 쿠데타로 집권한 군인 출신 대통령을 찬양하는 시를 써서 비판을 받아온 미당이 중앙고보 시절 사회주의 서적 독서회 멤버로도 활동했다는 사실은 이채롭다. 그는 1930년 ‘광주학생사건’ 1회 기념일 시위에 주동자의 하나로 선두에 섰다가 체포돼 서대문감옥 미결감 독방에 1838호 수인번호를 달고 수감됐던 일화도 소개한다. 미우라라는 이름의 젊은 일본인 검사가 “너, 어머니가 보고 싶겠지?”라고 여성적인 목소리로 물었는데 “어머니란 한마디에 마음이 복받쳐 올라 나도 몰래 그만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고 썼다.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선 유약한 심정을 “주모자답지 못해서 그 뒤 가끔 미안했다”면서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거니와 그가 향후 역사의 변곡점들에서 보인 처신도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10권 ‘풍류의 시간’에는 신라 정신과 불교 사상,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산문을 실었다. 11권 ‘나의 시’에는 미당 시의 정신적 뿌리와 단행본으로는 접할 수 없었던 다수의 자작시 해설, 후배들에게 주는 글 등을 수록했다. 미당은 타계 3년 전 발표한 산문 ‘나의 시 60년’에서 ‘문학을 공부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이렇게 썼다. “재능만으로 시인이 되는 건 아닙니다. 사실 나같이 재능도 없고 미련한 사람도 없습니다. 나에겐 다만 시에 대한 간절함이 있고, 표현상의 새 매력을 탐구하고 또 탐구하는 열성이 있었을 뿐입니다. … 아직도 나는 철이 덜 든 소년이고 여전히 소같이 우둔합니다. 60년 넘게 시를 써 왔는데도 시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는 한정 없기만 합니다. 나는 영원한 문학청년입니다.” 미당 서정주 전집 간행위원회(이남호 이경철 윤재웅 전옥란 최현식)는 “미당 문학 가운데에서 물론 미당 시가 으뜸이지만, 다른 글들도 소중하게 대접받아야 할 충분한 까닭이 있다”면서 “‘미당 서정주 전집’은 있는 글을 다 모은 것이기도 하지만 모두 소중해서 다 모은 것이기도 하다”고 발간사에 밝혔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