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극단 김광보(53) 연출이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과 다시 만났다. 2014년 공연한 ‘사회의 기둥들’ 이후 3년 만이다. ‘사회의 기둥들’은 세월호 참사를 빼닮은 장면들로 관객을 망연하게 했다. 쓰인 지 154년 만에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왕위 주장자들’ 역시 현 사회와 맞닿아 있다. 왕좌를 탐하는 인간들의 내면이 낯설지 않다. 공교롭게 공연 기간마저 ‘장미대선’이 코앞인 오는 31일부터 내달 23일까지다. 최근 세종문화회관 서울시극단에서 김 연출을 만났다.
서울시극단 김광보 연출이 ‘사회의 기둥들’에 이어 다시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희곡 ‘왕위 주장자들’을 올린다. 쓰인 지 154년 만에 국내 초연하는 작품이다. 이재문 기자 |
그는 “희곡이 워낙 좋다”며 “희곡에 많이 얹혀 간다”고 했다. 이 작품은 13세기 노르웨이가 배경이다. 왕좌에 앉은 호콘은 오만에 찬 확신형 인간이다. 스스로 선택받았다 굳게 믿고 앞만 보고 달린다. 상대편인 스쿨레 백작은 왕좌를 갈망하지만, 자신이 정당한지 끊임없이 의심한다. 니콜라스 주교는 모사가다. 책략을 꾸며 죽은 후에도 노르웨이를 지배하고 싶어 한다. 작품은 이들의 왕위 쟁탈전을 그린 정치·역사극이지만, 심리극이기도 하다. 눈먼 확신의 위험함, 의심하는 인간의 역설적 힘을 그린다.
입체적 인물이다보니 연기하기가 쉽지는 않다. 김 연출은 “보통 8주면 되는데 작품이 어려워서 11주 동안 연습 중”이라며 “미세한 심리까지 보여줘야 하고, 배우들이 자기 존재에 대한 질문을 내면 깊숙이서 끄집어내 연기해야 하니 어렵다”고 전했다. 관객 반응은 일단 희망적이다. 최근 개최한 낭독공연에서 호평이 이어졌다.
이 작품이 서울시극단 20주년 기념작인 것도 김 연출에게는 부담이다. 그는 “20주년이니 오래 기억될 작품을 하고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실적을 올려야 하니까”라며 털털하게 웃었다. 그는 2015년 6월 서울시극단장에 임명돼 22개월째 일하고 있다.
“20년을 총괄하는 작품이라 부담스러워요. 극단장 자리가 연출뿐 아니라 여러 가지 신경을 많이 써야 해요. 살림을 책임져야 하잖아요. 그래도 실적이 많이 개선됐습니다. 제가 오기 전 제작비 대비 수익률이 30%대였는데 지금은 78%거든요. 재정 자립도도 제가 온 후 42%로 올라섰어요. 그 전에는 30% 이하였다고 들었어요.”
연기의 까다로움과 20주년이란 명분에 앞서 그의 어깨를 무겁게 하는 건 입센이라는 작가 자체다. 그는 “연출하면서 작가의 통찰력에 밀려 작품하기가 굉장히 힘들었던 경우가 딱 한 번 브레히트의 ‘억척 어멈과 그의 자식들’ 때였다”며 “이번에 다시 ‘입센의 공력에 내가 딸리는구나’ 하고 느꼈다”고 했다. 입센은 그에게 그만큼 특별하게 자리 잡았다. “입센의 대단함은 ‘사회의 기둥들’을 하면서 공감할 수 있었어요. 그의 작품들은 시의적절해요. 여기에 매력을 느껴요. 연극은 무언가에 대해서 발언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현재와 만나 시의성 있는 얘기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150여년 전에 나온 입센의 작품들이 마치 현 사회를 보고 쓴 것처럼 생생한 이유로 그는 ‘통찰력’을 들었다. “누구나 다들 통찰력 있는 작가와 연출가가 되고 싶어 한다”는 그는 “당연히 입센이 부러운데 제가 글 쓰는 직업은 아니라서 그나마 덜 부럽다”고 농 반 진 반으로 말했다. 그는 앞으로 1년에 한 편씩 국내에 미소개된 입센 작품을 올릴 계획이다. 그간 입센이 쓴 25편 중 11편만이 국내에서 공연됐다. 첫 타자는 내년에 선보일 입센의 ‘브란’이다. 그는 “한 이상주의자의 희망과 좌절을 얘기하는데 지금부터 각색을 준비 중”이라고 귀띔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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