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스 교수는 이날 임채원 서울대 국가리더십센터 선임연구원의 도움으로 이뤄진 이메일 인터뷰에서 “권력의 불균형에서 비롯되는 폐단을 방지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두 가지 방법은 입법부 강화와 행정부의 자의적 권력행사 제한”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에 대해선 “대통령에 대한 효과적 견제 장치를 마련하는 것과 함께 금권정치의 근절을 위한 근본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피터스 교수는 이번 조기 대선에서 주요 쟁점으로 부상한 정당 간 연정·대연정에 대해 “예외적 상황이 발생한 경우에는 정치와 경제의 정상화를 위한 적절한 조처일 수 있다”면서도 “중요한 것은 책임 정치라는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부적절한 정치적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3월10일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됐다. 많은 한국인이 제왕적 대통령제와 행정부로의 권력 집중을 정치 혼란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는데.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이 한국 정치의 최근 위기 상황을 초래한 주요 원인 중 하나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대통령 권력 집중 현상만큼 중요한 다른 주요 요인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무소불위의 대통령은 부패 유혹에 빠지기 쉬운데, 그 이유는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권력의 속성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 해결의 핵심은 대통령에 대한 효과적 견제 장치를 마련하는 것과 더불어 금권정치 근절을 위한 근본적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다.”
―한국은 행정부가 입법부를 압도하는, 소위 ‘행정국가’라 할 수 있는가. 거버넌스학 전문가로서 조언을 한다면.
“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에서 행정부가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온 건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이 행정국가화한 배경은 외부 위협에 대한 효과적 대응과 경제 발전이라는 당시의 시대적 목표와 분리시켜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중요한 질문은 권력 간의 견제와 균형을 어떻게 제도화·실질화할 것인가, 공공부문의 핵심 기관 사이에 견제와 균형을 어떻게 성취할 것인가이다. 권력 불균형에서 비롯되는 폐단을 방지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두 가지 방법은 입법부 강화와 행정부의 자의적 권력 행사 제한이다. 다행스럽게도 한국 입법부에는 행정부처를 주기적으로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위원회가 설치돼 있고 또 제 기능을 하는 듯하지만, 입법부가 행정부 전반에 대한 통제 능력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최근에 한국에서 내각제에 가까운 정부 형태로의 전환을 꾀하는 일련의 개헌 논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내각제하의 집권 다수당 당수인 총리가 오히려 대통령보다 더 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내각제로의 개헌보다 더 실질적이고 즉각적인 개혁 방안은 의외로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감시체계 강화(예컨대 행정부에 대한 감사 기능 강화, 예산심사 기능 강화 등)일 수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한국의 헌법구조하에서는 총리의 실질적 권한을 강화함으로써 사실상 이원집정부제 효과를 발휘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많은 한국인이 5월 대선 이후 연정 또는 대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한다. 대통령제하에서 연정·대연정이 지속가능한 정부 거버넌스 구축에 기여할 수 있는지.
“일반적으로 대통령제하에서 3부 간의, 특히 행정부와 입법부의 대립은 제도적 필연이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제 논리 자체가 권력의 분립에 근거하기 때문이고, 삼권분립제도는 각 부가 다른 부에 대해 끊임없이 정치적 혹은 심지어 법적 책임을 묻는 통치제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외적 상황이 발생한 경우에는 대연정은 정치와 경제의 정상화를 위한 적절한 조처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대연정이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부적절한 정치적 선택이라는 것이다. 특히 대통령제하에서 더욱 그러하다. 단기적으로 국론 통일이 필요할 때는 대연정이 바람직할 수 있다. 하지만 민주정치가 “책임을 지는 것”임을 상기한다면, (정책 등을 비롯한 정부에 대한) 끊임 없는 문제제기와 논쟁을 통해 정부가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 거버넌스(good governance)의 첩경임은 논리적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권력이 중앙집중화한 한국에서 최근 권력의 분산 요구가 거세다. 권력의 분산 요구에 한국의 중앙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중앙정부의 권력 분권, 권한 업무 위임, 권리 의무 이양 등은 보편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풀뿌리 민주주의 시행 및 확대 요구, 비정부 행위자의 정부정책 결정에의 참여 요구 등은 불가역적인 시대적 대세라는 것이다. 다만 아직까지 시민과 각 층위의 정부가 이와 같은 유형의 거버넌스에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또한 협치 추구를 위해서는 보다 포용적인 정치체제와 과정의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 포용적 정치 과정은 달리 말하면 정부가 다양한 행위자들과 개별적으로 접촉하는 것을 지양하고 대신 투명성이 담보된 공론의 장에서 함께 숙의하는 과정이다.”
―관료와 정치인 간의 바람직한 관계는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한국의 관료 대부분은 유능하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때때로 정치에 쉽게 휘둘린다는 게 중론이다.
“관료와 정치인 간의 바람직한 관계 모색은 민주정부 구현에 있어 핵심적인 과제이다. 하지만 올바른 균형점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민주주의하에서 관료는 집권 정부에 대해 책임성과 반응성을 보여야 하지만, 동시에 법치주의를 중시하고 공익에 복무해야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고위 관료는 어느 정도 정치적 통제로부터 자율성을 보장받아야 한다. 고위 관료에게 일정 정도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은 엄격한 직업관료제의 제도화, 관료제 전반에 걸친 내부통제 장치, 관료 및 정치인에 대한 외부감시 장치, 관료 및 정치인이 각각의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숙지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 마련 등과 병행돼야 한다.”
―정치적 격변의 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인터뷰에서 논의된 여러 개념들은 어쩌면 상호대립적일 수 있는데, 그럼에도 그 개념들 간에 모종의 균형이 있을 수도 있음을 설파하려고 노력했다. 혼란과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갈 때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이다. 왜냐하면 극단적 선택은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정답이 하나만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고 최선을 다해 시대적 국가적 조건과 맥락을 반영한 의사결정을 추구해 진일보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것이다.”
특별기획취재팀=김용출·백소용·이우중·임국정 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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