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대를 향한 결정적 한방은 없었다. 지난 3월3일부터 30일까지 11차례에 걸쳐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들의 토론회는 ‘맹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상호 정책검증보다는 ‘네거티브’가 더 이목을 끌었다. 토론회 후반으로 가면서는 회차만 달라질 뿐, ‘재방송’처럼 엇비슷한 내용이 반복됐다. 민주당 토론회는 그렇게 반전 없이 마무리됐다. 3일 서울 고척돔에서 열리는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수도권 지역 경선을 앞두고, 지난 11차례 토론회에서 각 후보들의 주요 발언과 공방을 엮어 그 흐름을 되짚어봤다.

지난달 3일 열린 첫 토론회, 후보들은 각자의 출마 이유와 본선 경쟁력 홍보에 열을 올렸다. 문재인 후보는 “정권교체의 필승카드로 새 대한민국을 여는 1번타자가 되겠다”며 “민주당 단 한 명의 필승카드, 저 문재인”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대세론’의 문 후보에 대항해 안희정 후보는 “대화를 훈련받은 후보”라며 “호감도, 안정감, 본선경쟁력에서 (제가)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재명 후보는 “(자신은) 때, 장소, 상대에 따라 태도와 말을 바꾸지 않는다”며 “제대로 된 세상을 만드는 일은 흙수저인 저만 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각 후보들은 토론회 초반부터 자신이 당의 대선주자로 적임자임을 강조하며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문 후보의 ‘빅캠프’와 안 후보의 ‘대연정론’은 다른 후보들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6일 열린 토론회에서는 문 후보와 이 후보가 사안마다 거칠게 대립하며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 후보는 문 후보의 대기업 준조세 폐지공약을 물고 늘어지며 “불법수익 환수에도 미온적”이라고 도발했고 이에 문 후보는 “이렇게 하고 넘어갈 수 없다”고 해명 기회를 요구했다. 양측의 충돌을 지켜보던 안 후보가 “기본마저 불신하는 태도는 자제하자”고 촉구할 정도였다.

17일 토론회에서는 상대 후보의 약점을 파고들며 열띤 공방이 펼쳐졌다. 이날도 문 후보의 ‘리더십 부재’는 다른 후보들의 공격 대상이었다. 특히 가장 치열한 전선은 문 후보와 안 후보 사이에 형성됐다. 문 후보는 “(안 후보의 대연정론에 대해) 도둑과 손잡고 ‘도적질은 없애보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는 대연정이 아닌 대배신”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안 후보는 “(문 후보의) 캠프에 친재벌 인사 등 기득권자들을 대대적으로 모으고 있다”며 “대연정에 반대한다지만 실질적 뿌리를 보면 기득권과 대연정이란 의심이 든다”고 맞받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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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19일 열린 KBS 대선후보 경선 토론회에서 특전사 시절 사진을 소개하고 있다. |
5차 토론회(3.19)부터는 하나의 주제에 대한 난상토론이 가능해지면서 서로 상대의 말을 자르고 언성을 높이는 장면이 여러 번 연출됐다. 특히 경선 판도에 영향을 준 문 후보의 ‘전두환 장군 표창’ 발언이 나왔다. 문 후보는 자신의 투철한 국가·안보관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군 복무 당시 전두환 장군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고 말했지만 논란의 계기가 됐다.
다음날 열린 6차 토론회는 ‘네거티브전’을 둘러싸고 후보들이 각을 세운 장면이 하이라이트였다. 후보 1명이 나머지 3명에게 4분씩 주도권 토론을 이어갈 수 있었던 까닭에 상대 후보 맞춤형 설전도 이어졌다. 이 후보는 ‘(문 후보의) 전두환 표창장’과 ‘(안 후보의) 대연정 구상’을 한데 묶어 공세를 펼쳤다. 이에 문 후보는 “네거티브만큼은 하지 말자”며 “지지자들끼리 인터넷에서 그러는 것은 막을 수 없다 하더라도 선대위 차원에서는 그렇게 하지말자”고 호소했다. 이에 안 후보는 “문 후보는 점잖게 말씀하는데 주변에서는 아프게 때리는 일들이 반복된다”며 “내용적 비판이 아니라 상대방 인격을 공격해서 문제”라고 역공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또 한 가지 유권자들의 흥미를 끈 장면은 서울 상암동의 MBC사옥에서 열린 토론회임에도 문 후보가 “적폐청산의 가장 중요한 분야 중 하나가 언론적폐”라며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공영방송을 정권의 방송으로 만드는 바람에 다 망가지고 MBC도 무너졌다”는 발언이었다.
24일 열린 7차 토론회는 경선 최대 승부처인 호남 민심을 잡기 위한 후보들의 난타전이 펼쳐졌다. 호남권 선거인단 ARS투표(25, 26일)와 대의원 순회투표(27일)를 코 앞에 둔 후보들의 신경전이 치열했다. 지난해 4·13총선에서 호남 의석을 싹쓸이하다시피 한 국민의당과 연대 문제가 부각됐지만, 문 후보와 안 후보의 네거티브 프레임이 여전했다. 안 후보는 “그동안 문 후보에게 까칠하게 질문해서 속상하지 않았느냐”고 물었고 문 후보는 “오히려 안 후보가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 같다”며 서로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는 모양새를 보였지만, 결국 다시 설전이 이어졌다. 안 후보는 “문 후보는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모는 어법으로 정치를 하고 있다. 저도 문 후보 진영으로부터 ‘애 버렸네’라는 소리를 듣는다. 문 후보가 그런 싸움을 방치하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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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최성, 문재인, 안희정 경선후보(왼쪽부터)가 지난 3월 17일 서울 충무로 MBN스튜디오에서 TV토론회를 하기에 앞서 손을 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8∼10차 토론회는 맥이 빠졌다는 평이 많았다. 특히 토론이 열린 방송국과 지역만 바뀌었을 뿐 ‘알맹이’가 없었다는 지적이 많았다. 25일 충북 청주에서 열린 8차 토론회는 방송 송출을 놓고 문제가 발생했다. 애초 민주당이 MBC충북이 주관하는 충청지역 토론회를 대전·충남·충북에 송출하려 했지만 대전MBC와 협의가 여의치 않아 대전·충남지역에는 방송이 나가지 않을 상황에 처했던 것이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26일 대전·충남지역 토론회가 추가로 개최됐지만 선관위의 매끄럽지 않은 운영은 빈축을 샀다.
토론 방식에 있어서도 후보들에게 주어진 공통질문이 4개나 돼 상호 토론시간이 앞선 토론회에 비해 줄어들었고, 일부 후보들은 아예 ‘공약 세일즈’에 나서면서 좀처럼 후보간 공방을 보기 힘들었다. 28일 열린 10차 토론회는 전날 호남 순회 경선에서 문 후보가 압도적인 득표율로 승리하면서 열기가 반감됐다.
30일 열린 마지막 토론회에서도 문 후보에 대한 집중공략이 이어졌지만, 안·이 후보의 2위 경쟁 공방전도 만만치 않았다. 안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의회와) 대화도, 협상도 안 된다고 탄식하지 않았느냐”며 정쟁 구조 극복을 위한 대연정론을 꿋꿋이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 후보는 “차라리 국민과의 대연정이 어떠냐”며 “(대연정은) 자칫 ‘묻지마’ 통합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11번의 토론회가 열리는 동안 각 후보에 대한 검증은 이처럼 ‘수박 겉핥기’에 머물렀다. 결국 문 후보의 ‘공공일자리 창출’, 안 후보의 ‘전국민 안식년제’, 이 후보의 ‘기본소득’ 등 후보들의 주요 공약은 제대로 유권자들에게 소개되지 못했다. 이에 비해 준비된 원고 없이 현장 질문을 후보자가 답하거나 상대 후보와 질문과 답변을 이어가는 방식의 스탠딩토론 등을 선보였던 바른정당은 기성정당의 토론회와 차별화했다는 평을 받았다.
김선영 기자 00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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