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성이 표출되고 인정되는 다원화된 시대, 유권자들 이슈별로 진보 보수를 넘나드는 것은 당연한 현상"
“정치지도자는 종교지도자처럼 절대적인 공약 내세우는 것 삼가야”
“장년 세대는 대북안보 이슈를, 2030은 분배 이슈를 이념정향의 가장 결정적 요인으로 간주...진보보수를 두고도 동상이몽"
#.1 국가보안법 폐지에 찬성하고 유화적인 대북정책을 선호하는 회사원 김모(31)씨. 사회안전망 확충에 찬성하지만 보편적 복지확대에는 극렬히 반대하고 대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재벌의 회사 이익 편취를 막는 게 시급한 경제문제라 생각하지만 막상 법인세 인상에는 반대한다. 또 교육양극화 해소가 절실하다고 믿지만 고교평준화는 되레 부작용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해 반대한다. 다시 돌아온 대선의 계절 ‘범보수 연대’, ‘범진보 연대’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는 시점에서 김씨가 자신의 소신만 얘기했다하면 지인들은 이도 저도 아닌 ‘회색분자’라는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가장 중시하는 각 대선주자들이 제시한 비슷비슷한 경제공약들을 살피다 보면 혼란은 더욱 커진다.

각 당의 경선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19대 대선의 대진표 윤곽과 함께 범진보 대 범보수의 후보 단일화 논의가 또 다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조기대선을 앞둔 시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진보’와 ‘보수’ 어느 쪽으로도 규정짓기 싫어하는데다 ‘중도’로 분류되기조차 원치 않는 ‘이념 회피층’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세대’와 ‘장년세대’가 진보와 보수의 표상을 전혀 다르게 인식하고 있는데다 반공주의 쇠퇴, 이슈 다면화 등 사회경제적 환경 변화로 인해 이미 다차원적인(multi-dimensional) 이념공간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내세우는 정치구호와 시민들이 중시하는 것 사이에 정치적인 괴리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주요 대선 주자들이 ‘진보’와 ‘보수’ 대표 후보를 브랜드로 내세우는 동안 막상 젊은 층과 장년층은 이를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젊은 세대가 상대적으로 중시하는 ‘분배와 성장이슈’와 관련해서는 진보와 보수 브랜드를 내세우는 후보들 간 차별화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예컨대 범진보 대세 후보로 꼽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법인세 명목세율 인상에 대해서 막상 일보 물러난 태도를 취한 반면 바른정당의 유승민 후보는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을 지지하고 있다. 출자총액제도 등 재벌개혁과 관련한 정책은 박근혜·최순실 사태 이후 사실상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제외한 모든 후보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중점 정책이다.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 석지현(31·여)씨는 “대선주자들이 파격적인 복지 정책을 내세우면서 막상 재원은 어떤 방식으로 마련할 것인지, 세수 확보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구체적인 알맹이들은 전혀 제시하고 있지 않아 혼란스럽다”고 선택에 갈피를 못 잡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라윤 기자 ry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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