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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못하던 유령국민¨20년만에 투표를 다짐한 사연

입력 : 2017-04-09 14:29:00 수정 : 2017-04-10 11:2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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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살아도 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투표에 참여하지 못하는 유령국민이었죠"

지난 6일 서울 양천구청에서 만난 임모(59)씨는 “마지막 투표가 15대 대선 선거가 있었던 20년 전”이라고 했다. 

임씨는 “노모와 조카를 위해 폐지를 줍느등 먹고 사느라 선거가 뭔지 모르고 살았고 4년전부턴 거주불명자로 주민등록이 말소돼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어졌다"고 투표와 멀어졌던 이유를 설명했다.  

또 "투표가 나의 삶을 변화시켜줄 거란 믿음이 없었다"라는 임씨는  “이번에는 그 생각을 고쳐 먹었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서울 양천구 해누리타운에서 상담 중인 임씨(오른쪽)와 통합사례관리사 김현진씨. 사진제공-양천구청

그의 사연을 들어보면 이 사회가 임씨를 투표에서 멀어지게 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임씨는 90세 노모와 지적장애가 있는 조카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인쇄소에 일하며 열심히 살았지만 인쇄업이 어려워지자 사채를 써 빚더미에 올랐다. 

채권자를 피해 노모와 조카를 데리고 여기저기 도망 다니다보니 그는 거주불명자로 지정됐다. 거주불명자로 지정되면 주민등록이 말소돼 의료혜택과 투표권을 누리기 힘들어 진다. 

씻거나 머리카락을 자를 여유도 없어 행색이 누추한 임씨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피하기 바빴다. 그는 대부분 쪽 방안에서 신문이나 TV에 의지해 홀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임씨는 “방안에서 뉴스를 보다보니 어느 순간 사회가 너무 원망스러웠다”고 말했다. 

폐지를 한 달 내내 주워도 고작 20만 원가량 손에 쥘 수 있었고, 노모의 병원비로만 한 달에 10만 원 이상이 들었다. 지적장애가 있는 조카의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장애를 가진 이 아이가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이 됐다. 

그때부터 그는 1주일에 한 번씩 국회의원 실에 전화를 걸어 “저소득층에게 관심을 좀 가져달라”고 외치며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방안에 홀로 유령처럼 지내던 임씨를 발견한 건 양천구청 희망복지팀 통합사례관리사 김현진 씨였다. 통합사례관리사는 시군구에 배치돼 복지사각지대를 찾아다니며 복지상담이나 사례관리를 실시하는 복지사다.

김 복지사는 처음에 지적장애가 있는 조카의 양육문제를 돕기 위해 임씨의 집을 찾았다. 임씨의 사연을 들은 그녀는 5년 간 임씨의 집에 들락날락 거리며 말동무를 자청했다. 

처음에 임씨는 어머니와 조카나 만나고 가라며 방문을 닫아버렸지만 꾸준한 김씨의 관심에 점점 마음의 벽을 허물었다.

“김 선생님이 집에 오면 우리 어머니도 포기한 저에게 방문을 열어라, 청소해라, 이발해라, 조카 목욕시켜라 잔소리를 하는 거 에요. 출산 때문에 잠시 안 오신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선생님 잔소리가 그립더라구요”

김씨는 “자신의 권리를 당당히 행사하라”며 임씨를 설득해 주민등록 회생 신청을 도왔다. 

지난해 이른바 유령신분에서 벗어난 임씨는 주민센터에서 긴급 생계비 신청을 했고 지금은 오토바이를 배우며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행정자치부의 올해 3월 기준 인구통계에 따르면 재외국민을 포함한 전체 국민은 5171만 명이다. 그중 거주불명자는 46만 명이다. 전체 국민의 약 0.89%가 국가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김씨는 “노숙자 분들 중에도 거주불명자들이 많을 텐데 이들을 사회로 이끌어 낼 수 있는 관심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임씨는 20년 만에 맞은 대선에 대해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민원전화 그거 해봤자 바쁘신 양반들이 만나주지도 않아요. 주민등록증이 없어서 투표를 못했는데 이제 떳떳하잖아. 우리같이 못사는 사람들 위하는 대통령!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을 겁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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