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 여성이 스마트폰으로 들어온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
정부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날짜까지 명시한 가짜뉴스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았다. 지난 6∼7일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측이 공동기자회견이나 공동성명 발표 없이 회담을 마무리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합의했다”며 북폭을 기정사실화하는 거짓 사설정보지(지라시)들은 사람들에게 잠재되어 있던 불안감에 불을 붙였다.
◆ 공포마케팅에 춤추는 국내 정국
이같은 사태는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특수상황에서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자극하는 공포 마케팅에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다. 공포마케팅의 대표적인 사례가 할리우드 영화다. 영화 ‘투모로우’(2004)나 ‘2012’(2009)처럼 지구적 재난과 종말을 그린 할리우드 영화들은 대부분 흥행에 성공했다. 사람들의 잠재의식에 숨어있는 종말에 대한 공포를 효과적으로 자극했기 때문이다.
![]() |
싱가포르를 떠나 한반도 근해로 이동중인 미 핵항공모함 칼 빈슨. 미 해군 제공 |
지라시가 유포된 10일 주식시장은 방위산업 관련주가 급등하는 등 요동쳤다. 빅텍은 코스닥에서 가격제한폭(30%)인 1210원 상승해 5260원에 장을 마쳤다. 퍼스텍도 545원(12.7%) 오른 4835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대표적 방산주인 한화테크윈(2.63%) 한국항공우주산업(0.52%) LIG넥스원(0.36%) 등도 강세였다. 이날 주식시장은 전반적으로 약세를 보였지만 우주항공과 국방업종은 1.46% 올라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때문에 증권가에서는 증시에 영향을 미치려는 작전세력이 지라시를 유포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 |
미국의 북한 선제 타격설로 한반도에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12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으로 견학을 나온 초등학생들이 망원경으로 북한 지역을 살펴보고 있다. 파주=남제현기자 |
◆ 괴담 유포 책임은 정부와 군에 있다
이번 일은 우리 사회가 북한의 위협을 자극한 괴담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증명했다. 핵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와 구축함 등 동아시아를 담당하는 미 해군 7함대 소속 함정 상당수가 정기 수리를 받고 있어 칼빈슨호를 포함한 3함대 전력이 이동했다는 사실은 북폭 가능성이라는 공포에 묻혀버렸다.
이같은 공포와 괴담은 우리 사회에서 불안과 위험이 일상화된 것에 기인한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백은 저서 <위험사회론>에서 테러, 환경파괴, 실업, 전염병, 전쟁 등 재앙이 반복되면서 위험이 일상화되지만 위험의 실체는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고 통제도 불가능해 막연한 불안감만 확산된다고 지적했다. 불안이 널리 퍼진 상황에서 국가적 위험이 발생했을 때 정부가 위험통제능력을 과신하거나 무능하게 대처해 국민의 불신을 초래하면 사회 전체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 |
항모 칼 빈슨에서 E-2D 조기경보기가 이륙을 위해 엔진을 가동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군은 ‘압도적인 전력을 동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북한은 도발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식의 전략을 구사했다.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이 발생하기 전 국방부는 북한의 서북도서 도발 가능성이 제기되자 “현장 지휘관이 가용할 수 있는 전투력을 모두 동원해 현장에서 조기에 작전을 승리로 종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서북도서 주둔 해병대 병력은 물론 공군 전투기와 초계함 등 육해공군 전력을 총동원해 북한 도발을 제압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압도적 우위의 적과 수십년을 싸워 살아남은 빨치산의 ‘의표 찌르기’ 전통을 간직한 북한의 ‘창조도발’에 우리 군의 기대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과 같은해 11월 연평도 포격, 2015년 비무장지대(DMZ) 지뢰 및 포격도발은 우리 군의 대북 억지전략이 얼마나 취약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대결 일변도인 정부의 대북 정책도 국민 불안을 가중시켰다. 지난해 1월 4차 핵실험 직후 정부는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등 대북 제재와 봉쇄 전략에 올인했다. 다른 대안을 용인하지 않는 외곬수식 대북 압박은 남북관계를 그 어떤 대화도 없었던 1953년 휴전협정 직후로 되돌려놓았다. 동서양의 역사를 살펴보면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시기에도 외교관들이 상대국을 오가며 전쟁의 참화가 조국을 뒤덮는 것을 막으려 애썼다. 하지만 정부는 대북 압박과 제재 국면 강화에 몰입했고 군은 원점타격과 북한 전쟁지도부 궤멸 등을 경고하며 ‘말폭탄’을 이어갔다. 여기에 대북 강경정책을 주장하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자 국민들의 불안은 더욱 커졌다. 지라시가 위력을 떨칠 수 있는 환경을 정부와 군이 만들어놓은 셈이다.
![]() |
미 해군 관계자들이 경기 평택 소재 2함대사령부에 전시된 천안함을 살펴보고 있다. 미 해군 제공 |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밀어붙이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식의 대북 압박은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겁을 먹어야 할 북한은 꿈쩍하지 않고 국민들이 불안해한다면 정책의 실효성은 상실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제 다음달이면 대선을 통해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다. 차기 정부는 지난 9년 동안의 문제점을 되돌아보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정교한 대북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군도 북한을 자극하는 말폭탄 대신 체계적인 전력 증강을 통해 실질적인 대북 억지력을 구축하는데 전념할 필요가 있다. 4월 북폭설은 지라시에 정국이 요동칠 정도로 취약한 우리 사회구조가 정부의 막무가내식 안보 정책을 더 이상 견뎌내기 어렵다는 신호다. 차기 정부가 이번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 섬세한 위기관리전략과 대북정책, 체계적인 국가안보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