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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우리의 소원은 전쟁?”… 불안한 사람은 美 북폭설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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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15 11:00:00 수정 : 2017-04-15 10:3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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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미군은 북한의 핵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오늘 오전 4시30분 북한 영변 소재 5MW 원자로와 원심분리기시설이 밀집한 핵단지, 평북 철산군 동창리 로켓발사장, 함남 신포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관련 시설과 평양의 주요 지휘시설에 대한 공습을 단행했습니다.” 오전 6시,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TV를 켠 시민들은 정부의 긴급 성명에 경악했다. 북한이 휴전선 일대에 배치한 장사정포로 반격할 수 있다는 소문이 급속히 번지면서 증권시장은 폭락했고 서울은 대혼란에 빠진다.

한 여성이 스마트폰으로 들어온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다음달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반도 주변 정세가 심각하게 돌아가면서 ‘미국의 북한 선제타격 임박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급속히 번졌다. ‘달이 뜨지 않는 27일쯤 미국이 스텔스기로 북한을 선제타격한다’ ‘중국이 김정은에게 망명을 강권하고 있다’ ‘한국 내 일본인들을 대피시키려고 일본 대사가 귀임했다’ ‘외국계 기업들이 철수 준비를 하고 있다’는 내용들이었다.

정부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날짜까지 명시한 가짜뉴스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았다. 지난 6∼7일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측이 공동기자회견이나 공동성명 발표 없이 회담을 마무리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합의했다”며 북폭을 기정사실화하는 거짓 사설정보지(지라시)들은 사람들에게 잠재되어 있던 불안감에 불을 붙였다.

◆ 공포마케팅에 춤추는 국내 정국

이같은 사태는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특수상황에서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자극하는 공포 마케팅에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다. 공포마케팅의 대표적인 사례가 할리우드 영화다. 영화 ‘투모로우’(2004)나 ‘2012’(2009)처럼 지구적 재난과 종말을 그린 할리우드 영화들은 대부분 흥행에 성공했다. 사람들의 잠재의식에 숨어있는 종말에 대한 공포를 효과적으로 자극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를 떠나 한반도 근해로 이동중인 미 핵항공모함 칼 빈슨. 미 해군 제공
공포마케팅의 가장 큰 장점은 단기간에 강력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허구의 공포요소를 만들어 활용하면 효과가 없는 만큼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엮어서 프레임을 짠다. 4월 북폭설을 유포시킨 지라시도 지난 10일부터 진행중인 한미 연합 군수지원 훈련 ‘퍼시픽 리치’와 미중 정상회담, 미군의 시리아 공습 등을 짜깁기해 얼핏 보면 그럴듯한 자료를 만들었다. 여기에 싱가포르에 있던 미 해군 핵항공모함 칼빈슨호가 호주 방문을 취소하고 서태평양으로 출발한 것과 맞물려 급속히 번졌다.

지라시가 유포된 10일 주식시장은 방위산업 관련주가 급등하는 등 요동쳤다. 빅텍은 코스닥에서 가격제한폭(30%)인 1210원 상승해 5260원에 장을 마쳤다. 퍼스텍도 545원(12.7%) 오른 4835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대표적 방산주인 한화테크윈(2.63%) 한국항공우주산업(0.52%) LIG넥스원(0.36%) 등도 강세였다. 이날 주식시장은 전반적으로 약세를 보였지만 우주항공과 국방업종은 1.46% 올라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때문에 증권가에서는 증시에 영향을 미치려는 작전세력이 지라시를 유포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미국의 북한 선제 타격설로 한반도에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12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으로 견학을 나온 초등학생들이 망원경으로 북한 지역을 살펴보고 있다. 파주=남제현기자
대선 정국도 탄핵에서 ‘안보’로 돌아섰다. 정부는 “4월 위기설이나 북폭설을 믿지 말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보수 표심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에게 쏠리자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 범보수진영은 ‘안보=보수’ 프레임 만들기에 나섰다. 하지만 주한미군 사드 배치 등 주요 안보 이슈를 놓고 대선 후보들의 입장이 서로 비슷하게 바뀌고 있어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 괴담 유포 책임은 정부와 군에 있다

이번 일은 우리 사회가 북한의 위협을 자극한 괴담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증명했다. 핵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와 구축함 등 동아시아를 담당하는 미 해군 7함대 소속 함정 상당수가 정기 수리를 받고 있어 칼빈슨호를 포함한 3함대 전력이 이동했다는 사실은 북폭 가능성이라는 공포에 묻혀버렸다.

이같은 공포와 괴담은 우리 사회에서 불안과 위험이 일상화된 것에 기인한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백은 저서 <위험사회론>에서 테러, 환경파괴, 실업, 전염병, 전쟁 등 재앙이 반복되면서 위험이 일상화되지만 위험의 실체는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고 통제도 불가능해 막연한 불안감만 확산된다고 지적했다. 불안이 널리 퍼진 상황에서 국가적 위험이 발생했을 때 정부가 위험통제능력을 과신하거나 무능하게 대처해 국민의 불신을 초래하면 사회 전체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항모 칼 빈슨에서 E-2D 조기경보기가 이륙을 위해 엔진을 가동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우리 사회의 경우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수십년 째 계속되면서 국민들의 잠재의식에는 불안감이 늘 존재한다. 국민들의 안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정부와 군의 세심한 위기관리가 필수적이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지속된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군이 보여준 모습은 국민의 불안과 불신을 부채질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군은 ‘압도적인 전력을 동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북한은 도발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식의 전략을 구사했다.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이 발생하기 전 국방부는 북한의 서북도서 도발 가능성이 제기되자 “현장 지휘관이 가용할 수 있는 전투력을 모두 동원해 현장에서 조기에 작전을 승리로 종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서북도서 주둔 해병대 병력은 물론 공군 전투기와 초계함 등 육해공군 전력을 총동원해 북한 도발을 제압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압도적 우위의 적과 수십년을 싸워 살아남은 빨치산의 ‘의표 찌르기’ 전통을 간직한 북한의 ‘창조도발’에 우리 군의 기대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과 같은해 11월 연평도 포격, 2015년 비무장지대(DMZ) 지뢰 및 포격도발은 우리 군의 대북 억지전략이 얼마나 취약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대결 일변도인 정부의 대북 정책도 국민 불안을 가중시켰다. 지난해 1월 4차 핵실험 직후 정부는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등 대북 제재와 봉쇄 전략에 올인했다. 다른 대안을 용인하지 않는 외곬수식 대북 압박은 남북관계를 그 어떤 대화도 없었던 1953년 휴전협정 직후로 되돌려놓았다. 동서양의 역사를 살펴보면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시기에도 외교관들이 상대국을 오가며 전쟁의 참화가 조국을 뒤덮는 것을 막으려 애썼다. 하지만 정부는 대북 압박과 제재 국면 강화에 몰입했고 군은 원점타격과 북한 전쟁지도부 궤멸 등을 경고하며 ‘말폭탄’을 이어갔다. 여기에 대북 강경정책을 주장하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자 국민들의 불안은 더욱 커졌다. 지라시가 위력을 떨칠 수 있는 환경을 정부와 군이 만들어놓은 셈이다.

미 해군 관계자들이 경기 평택 소재 2함대사령부에 전시된 천안함을 살펴보고 있다. 미 해군 제공
극단적인 압축 성장을 거듭한 우리나라는 경제성장기에 부의 축적에만 몰두한 결과 위험을 덜어줄 사회적 연대가 사라졌다. 그 결과 위험과 불안, 불신이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다. 때문에 약간의 충격에도 사회가 뿌리째 흔들렸다. 이명박 정부 당시 발생했던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논란, 박근혜 정부에서 일어난 세월호 사고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사태 등은 국민들을 패닉상태에 빠뜨렸다. 정부를 믿지 못하게 된 국민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들어오는 지라시를 더 믿었고 이는 경제적, 사회적 충격으로 이어졌다. 사실과 거리가 먼 루머에도 흔들릴만큼 우리 사회 구조가 그만큼 취약해졌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밀어붙이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식의 대북 압박은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겁을 먹어야 할 북한은 꿈쩍하지 않고 국민들이 불안해한다면 정책의 실효성은 상실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제 다음달이면 대선을 통해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다. 차기 정부는 지난 9년 동안의 문제점을 되돌아보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정교한 대북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군도 북한을 자극하는 말폭탄 대신 체계적인 전력 증강을 통해 실질적인 대북 억지력을 구축하는데 전념할 필요가 있다. 4월 북폭설은 지라시에 정국이 요동칠 정도로 취약한 우리 사회구조가 정부의 막무가내식 안보 정책을 더 이상 견뎌내기 어렵다는 신호다. 차기 정부가 이번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 섬세한 위기관리전략과 대북정책, 체계적인 국가안보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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