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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구축함을 위시한 해군 함정들이 기동훈련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해군 제공 |
◆ 무기 도입으로 북한 도발 억제는 ‘한계’
냉전 종식으로 공산권이 무너진 직후인 1990년대부터 한반도의 군사적 대치 국면은 극적인 변화를 맞았다.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최악의 경제난을 겪은 북한은 자신들이 군사적 우위를 유지할 수 있는 핵무기, 탄도미사일, 특수전, 장사정포 등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비대칭 전력’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매우 저렴한 노동력과 군수산업을 국가가 독점한 덕분에 북한의 비대칭 전력 증강은 순조롭게 진행돼 핵, 미사일 전력을 담당하는 전략군을 운영할 정도로 비대칭 전력을 키울 수 있었다. 북한은 비대칭 전력을 확보한 2000년대 후반부터 우리 군의 허점을 찌르는 창의적 전술인 ‘창조도발’에 나섰다. 우리 군이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내세웠던 ‘창조국방’보다 10여년 먼저 군사 분야에 창조적 기풍을 불어넣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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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군의 차기 전투기 F-35A. 록히드마틴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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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의 신형 해상작전헬기 와일드캣. 2차 사업도 조만간 가시화될 예정이다. 아구스타 웨스트랜드 제공 |
북한의 비대칭 위협이 대두될 때마다 새로운 무기를 도입해 저지한다는 군 당국의 기존 방식은 북한에 비해 압도적 우위의 경제력을 가진 우리나라에게도 상당한 경제적 부담을 안겨줘 정부로 하여금 예산 삭감을 시도하게 한다. 이는 군 당국이 북한의 비대칭 위협을 대형 무기도입사업의 명분을 내세우면서 기존 전력 운용의 효율화 등 ‘저렴하지만 티가 잘 나지 않는’ 대안 마련을 소홀히 했던 것에 원인이 있다.
위력이 센 무기를 도입해 북한 위협에 맞서려는 군의 전략은 예산 사정을 고려해야 하는 정치권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군사적 긴장 고조는 국방비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경기부양과 복지에 필요한 재정 소요를 잠식한다.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했던 이명박 정부 시절 군과 청와대, 정부는 예산 문제로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2009년 8월 이상희 당시 국방부 장관은 청와대와 기획재정부에 국방 예산 삭감에 반대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의 국방예산 조정 의중을 읽고 있던 장수만 당시 국방부 차관과 충돌하면서 ‘하극상’ 논란이 일었다. 이 사건 직후 이 장관은 김태영 당시 합참의장에게 장관직을 넘기고 물러나야 했다.
현재는 핵실험 등 북한의 거듭된 도발로 국방예산 확보가 순조롭다. 하지만 다음달 출범할 차기 정부의 국가안보전략과 경제 전망 등에 따라 국방예산에 ‘메스’가 가해질 가능성은 남아있다. “국방예산 증가 폭을 억제하라”는 정치권의 요구가 강해질 경우 지난 10여년 동안 지속된 대형 무기도입 사업의 확대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 軍, 뭔가 깨달은 것 같으나 갈 길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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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동해안에서 실시된 사격훈련에서 천무 다연장로켓이 불을 뿜고 있다. 육군 제공 |
군은 차기 정부 출범을 한 달 정도 앞둔 14일 2022년까지 238조원을 전력 증강에 투입하는 ‘2018~2022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했다. 국방 중기계획은 향후 5년 동안의 군사력 건설 및 운영에 대한 청사진으로 1년 단위로 수정한다.
북한 핵, 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한국형 3축 체계 구축시점을 2020년대 중반에서 2020년대 초반으로 앞당겼다. 5년 간 10조2000억원이 투입되는 한국형 3축 체계는 북한이 도발 징후를 보이면 킬 체인(Kill Chain)으로 탄도미사일을 제거하고, 발사된 미사일은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로 요격하며, 정밀유도무기와 특수부대를 투입해 북한 지도부를 응징하는 대량응징보복(KMPR)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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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패트리엇 지대공미사일이 표적을 향해 발사되고 있다. 공군 제공 |
군 안팎에서는 2018~2022 국방중기계획이 보여주기식 화려함보다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진지하게 고려한 흔적이 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군 소식통은 “레이저 등 신무기가 전면에 등장했던 지난해와 달리 기존에 추진하던 계획을 앞당기거나 운용중인 무기의 성능개량이 대거 포함됐다”며 “이번 계획을 보면 ‘북한 도발을 기존 방식으로는 대처할 수 없다.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느껴진다”고 밝혔다. 또다른 군 소식통은 “이번 계획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무인기와 위성”이라며 “서북도서에서 북한 황해도 일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무인정찰기와 특수작전용 무인기, 정보융합체계가 확보되면 기존 타격자산과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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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동해안에서 실시된 사격훈련에서 KH-179 야포가 발사되고 있다. 육군 제공 |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당시 우리 군이 북한 방사포 등에 큰 피해를 입히지 못했던 것은 K-9 자주포의 성능이나 화력 부족이 아닌, 정찰자산의 부재로 북한군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처럼 무기 전시장 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첨단무기를 사들였지만 이 무기의 위력을 극대화하는데 필요한 지원체계는 여전히 미숙하다.
우리 군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9년 동안 말 그대로 ‘돈잔치’를 벌였다. 하지만 잔치에도 끝은 있는 법. 9년에 걸친 돈잔치의 결과는 무기 운영유지에 필요한 후속군수지원비라는 명세서로 나타날 예정이다. 무기 도입비보다 수십배 비싼 후속군수지원비는 우리 군의 주머니 사정을 심각하게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예산 압박속에서 북한 핵,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고 대북 억지력을 확보하려면 첨단무기 도입 대신 적은 예산으로 기존 무기의 활용도를 극대화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새로운 정부 출범을 앞둔 지금, 우리 군에 필요한 것은 고가의 첨단무기보다는 사고의 전환과 패러다임 혁신을 오래 지속할 의지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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