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자들은 이런 얘기를 할 때면 공화국이란 말의 영어 리퍼블릭(republic), 그 말의 어원이 되는 라틴어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를 인용한다. 이 단어의 원뜻은 ‘공공의 것’이라고 하니, 나라라는 것이 군주 한 사람의 것이 아닌 많은 사람 혹은 ‘공공의 것’이라는 뜻으로 풀이하는 것 같다. 다시 말하면 국민이 주인이 되는, 공공의 기준으로 운영되는 나라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정치학에서 쓰는 이 말은, 라틴어의 원뜻이 동양으로 들어올 때 ‘공화’란 단어를 골라 대입을 한 것인데, 이 공화국이나 공화정이란 것을 흔히 고대 이탈리아 일대를 통일한 로마가 BC 509년 이후 처음 실시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보다도 300여년 전인 BC 841년에 중국에서 시작된 것임을 잘 모르고 있다. 그리고 이 공화정의 발단이 언로를 통제했던 데서 비롯됐다는 점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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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 언론인·역사저술가 |
자세히 보면 동양 역사에서 최초의 반정(反正)인 공화정의 원인이 나라 사람들의 입을 막은 데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서 잘잘못을 말하는 것을 위력으로 막다가 나라를 잃고 자신도 쫓겨난 것인데, 이처럼 정치지도자는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목소리를 억지로 막으면 안 된다는 점을 이미 2800여년 전에 경험으로 전해주고 있다.
우리가 지향하는 공화제(共和制)는 군주가 존재하지 않는 정치체제이다.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하고 해방 이후 70년 이상 이 개념을 지켜왔다. 때때로 정변이 있었지만 우리 국민은 선거를 통해 최고지도자를 뽑고, 또 다른 선거를 통해 국민의 대표를 뽑아 그들이 서로 견제하면서 국민의 뜻에 따라 국민을 위하는 정치를 하는 것을 당연하게 믿어왔다. 다만 그들에게만 맡길 수 없어 사법제도와 언론에 감시와 길잡이 역할을 하도록 해 왔다. 언론은 지도자가 많은 사람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뜻을 받아들이라고 촉구한다. 더 이상 특정인만으로 그들의 리그를 형성하고 그것으로 나라를 운영하면 안 된다. 지도자를 모시는 사람들도 마치 군주를 모시는 것 이상으로 모든 지시나 명령을 그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복종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믿어왔다.
군주와 백성의 관계를 배와 물로 비유한 맹자의 가르침에 따라 당나라 때 육지(陸贄·754∼805)는 말했다. “배는 곧 왕의 길이고 물은 곧 인심입니다. 배는 물길을 따르면 뜨고 거스르면 가라앉습니다. 임금은 사람의 마음을 얻으면 굳건해지고 잃으면 위태로워집니다. 이 때문에 옛날 훌륭한 임금은 사람들의 위에 있을 때는 반드시 천하 사람들의 마음을 좇으려고 하였고 감히 천하 사람들을 가지고서 그의 욕심을 좇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20일 정도 남은 대선, 각 당 후보들이 국민을 대변하겠다고 외친다. 이 시대 국민의 바람은 무엇일까. 과거의 잘못을 다시 반복하지 않고, 명철한 비전으로 냉엄한 국제정세에 대응하고, 긴장만 계속되는 남북관계도 과감하게 개선해 전쟁의 위험을 줄이며, 경제를 살려 국민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 아닐까. 그 과정에서 국민의 입과 귀를 막고 눈을 감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내일은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되돌린 4·19혁명 57주년. 또다시 임기 중간에 불명예를 안고 내려서는 지도자가 나오지 않는 진정한 민주공화국이 되기를 우리는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동식 언론인·역사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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