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 공약만 놓고 보면 보수와 진보를 가릴 것 없이 모두 한결같이 ‘친중소기업’ 대선 후보들이다. 국내 기업의 99%, 노동자의 88%를 담당하고 있는 이른바 ‘99·88’의 표심을 겨냥한 정치적 행보다. 선거 때마다 ‘재벌중심의 경제구조를 탈피해 중소기업을 육성하자’는 목소리는 단골 메뉴였다.
![]() |
지난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동숭동 예술가의 집 울타리에 부착된 대선후보자 15명의 선거벽보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약 10m 길이의 선거벽보는 22일까지 전국 8만7600여 곳에 설치된다. 하상윤 기자 |
중소기업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간한 ‘중소기업 지원정책의 글로벌 패러다임 변화와 정책적 시사점’을 보면 우리나라 중소기업 지원체계는 산업통상자원부, 중소기업청을 비롯한 여러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중소기업 유관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예산 규모는 16조4670억원으로 국가 전체예산의 4.2%를 차지했다. 사업 수만 1284개다. 중앙부처가 14조1374억원(265개), 17개 지자체가 2조3295억원(1019개) 규모의 사업을 진행했다. 이에 따라 △정책 편중 심화 △단편적 소규모 지원사업의 생성 및 지속 △연계지원체계의 미비 △정책의 수요·공급 간 미스매치 △기업 규모 확대에 대한 인센티브 부족 등의 문제점이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왔다.
국회예산정책처 자료를 보면 박근혜정부 들어 중소기업 지원 예산은 매년 늘었다. 2013년 12조9710억원이던 것이 2014년 13조6491억원, 2015년엔 15조2788억원으로 증가했다. 연평균 증가율은 8.5%로 국가 예산 증가율(4.8%)의 두 배에 가깝다. 그러나 제조 중소기업의 적자기업 비중은 같은 기간 16.5%에서 20.8%,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대지 못하는 좀비기업(한계기업) 비율도 7.0%에서 9.2%로 오히려 더 높아졌다. 헛돈을 쓴 셈이다. KDI 관계자는 “중소기업은 약자라는 인식 아래 무분별하게 지원책을 쏟아내는 것은 중소기업 자생력을 되레 떨어뜨린다”면서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지원체계 구축이 절실하다”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인들의 기대도 크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달 중소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한 ‘19대 대통령에게 바라는 중소기업·소상공인 의견 조사(복수 응답)’에서 중소기업인들은 △일자리 창출 환경 조성(66.4%) △공정위 위상 및 불공정 거래행위 처벌 강화(65.4%) △중소기업에 불리한 금융제도 개선(63.0%) △소상공인 사회안전망 강화(59.7%) △중소기업부 신설(58.0%) 등을 차기 정부 핵심 과제로 꼽았다.
2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대선 후보들은 현재 중소기업청을 장관급 부처로 승격하는 정부부처 개편안을 공약으로 내놓고 있다.
![]() |
지난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두 번째 대선 TV토론에 앞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 자유한국당 홍준표, 바른정당 유승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국민의당 안철수(왼쪽부터)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
문 후보는 재벌의 ‘갑질’ 조사와 수사를 강화하는 범정부차원의 ‘을지로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공약도 내놨다. 을지로위원회에는 검찰과 경찰, 국세청, 공정위, 감사원, 신설될 중소벤처기업부가 함께 참여한다. 일감 몰아주기와 부당 내부거래,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을 엄벌한다. 징벌적 손해배상도 현행 최대 3배보다 더 강화한다.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특별법을 제정한다. 중소기업이 청년을 2명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세 번째 채용직원의 임금 전액을 정부가 3년 동안 지원하는 공약도 내놨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과학기술혁명과 창업혁명으로 미래산업 창업국가를 완성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창업 지원체계의 컨트럴타워로 창업중소기업부를 신설하고 민관협의체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신설 부서에 입법 발의권과 부처 간 행정조정권을 주고 창업부터 중소·벤처기업의 성장을 일관성 있게 지원하겠다고 제시했다. 연구개발 예산도 창업중소기업부로 일원화하기로 약속했다. 융합 생산 기술은 중소기업을 우선 지원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혁신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청년을 대상으로 2년간 매월 50만원씩 1200만원을 지원한다고 약속했다.
안 후보는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으로 지속가능한 경제구조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와 담합, 기술탈취 등 악의적인 불공정 관행은 엄중 제재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확대하고, 소비자집단소송을 도입한다. 공정위 위원 선임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기업분할명령제 등 시장구조개선명령을 도입한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혁신형 강소기업 육성을 기치로 내걸고 중소기업부 신설을 약속하고 있다. 홍 후보는 2022년까지 중소·중견 전용 연구개발(R&D) 예산 10조원, 부처 간 연계시스템을 통해 정부 R&D 예산 중 중소·중견 지원비중 50%로 확대 등을 구체적인 공약 이행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홍 후보는 대기업·정규직과 중소기업·비정규직 격차완화를 위한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중소기업 창업 벤처기업들의 정책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도록 중소기업청을 창업중소기업부로 승격하는 공약을 내걸었다. 초·중등 교육과정 속 창업 관련 교육을 의무화하고 자유학기제 과정에 창업교육 비중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갑을관계를 악용한 대기업 불공정 행위 근절을 위해 공정거래 관련법률 전반에 ‘집단소송제도’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한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중소상공인부’ 신설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중소기업과 중소자영업 고유업종을 지정하고 법제화해 대기업의 무분별한 진출을 제한한다. 대기업(본청)과 협력업체(하청)간에 초과이익 공유제를 실시한다. 심 후보는 이어 하도급법의 구매강요, 공정거래법상의 모든 불공정 행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확대 적용,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집단소송제 도입 등을 약속하고 있다.
세종=이천종 기자 skylee@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