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후보들은 잠도 자지 않고 이리 뛰고 저리 움직인다.
이러한 선거 운동때마다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 이른바 '~카더라'라는 네거티브 공세이다.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불륜설'이 상대 후보를 잡기 위한 단골 네거티브 메뉴였다. 한번 걸리면 '아니다'라고 외치고 다녀도 싸늘해 진 주부들의 표심을 되돌리기 힘들었다.
나라 지도자를 뽑는 대통령 선거도 네거티브를 어떻게 이용하고 방어했는지에 따라 승패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번 19대 대통령 선거는 과거보다 네거티브 거리가 적을 것으로 예상 됐지만 '갑철수' 'MB 아바타' 등 뜻밖의 네거티브 논란이 빚어져 역시 네거티브 선거 사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 선거판을 뒤흔들었던 몇 몇 네거티브 공세를 찾아 봤다.

◇ 왜 네거티브 인가
24일 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 공장 1부'에서 김어준씨는 "네거티브 공세는 자기 지지자들 기세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그러면 상대방은 해명해야 한다. '나는 OO다'라고 주장해도 모자랄 시간에 '나는 OO가 아니다'라고 해야 하기 때문에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네거티브는 자기편 기운을 북돋우면서 상대 진을 빼게 만드는 일거양득의 매력적이고 달콤한 선거 전략이라는 말이다.

◇ 최고의 네거티브는 이회창 발목 잡은 김대업의 '병풍'
대선판에 가장 크고 효과를 본 네거티브 공세는 1997년 15대 대선과 2002년 16대 대선 때 나왔던 이른 바 병풍이다.
15대 대선에선 '대쪽 이미지'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새정치민주연합 김대중 후보가 격돌했다.
선거 중반까지 좋은 흐름을 이어가던 이회창 후보에게 김대업<사진=채널A 캡처>이라는 인물이 등장, 두 아들이 체중 미달로 병역 면제받았다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전 병무 하사관 출신인 김씨는 "전태준 전 국군의무사령관이 이 전 총재의 아들 정년 씨의 신검 부표를 파기하도록 지시했다"고 주장, 잘 나가던 이회창 후보에게 재를 뿌렸다.
선거권 행사를 통해서만 조금이나마 '평등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국민상당수가 이회창 후보에게 등을 돌렸다.
그 결과 이회창 후보는 994만5718표(38.7%)에 그쳐 1032만6275표(40.3%)를 받은 김대중 후보에게 패했다.
병풍은 2002년 16대 대선에서도 큰 위력을 발휘했다.
재수에 나선 이회창 후보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맞아 비교적 여유있게 선거전을 치러 나갔다.
하지만 2002년 6월 김대업씨가 재등장했다.
이번에 김씨는 15대와 조금 다른 주장을 펼쳤다. 1997년 대선 직전 이 전 총재측이 아들의 불법 병역면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병무청장과 수차례 만났다고 했다.
김씨는 이 후보의 부인 한인옥씨가 장남 정연 씨의 병역 문제에 연루됐다며 녹취록까지 제시했다.
검찰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청을 의뢰했지만 녹취테이프는 '판독 불가'로 판명났다. 검찰은 대선 두달 전 이 후보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지만 이미 판은 깨졌다.
두번이나 병풍에 갇힌 이회창 후보는 1144만3297표(46.6%)로 1201만4277표(48.9%)의 노무현 후보에게 졌다.
김대업 씨는 2004년 2월 27일 수사관 자격 사칭과 명예훼손 혐의로 징역 1년 10월의 형을 받았지만 선거는 이미 끝난 뒤였다.

◇ 김대중을 따라 다녔던 '레드 콤플렉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정희 위세가 절정에 달했던 1971년 제 7대 대통령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나와 접전을 펼쳤다.
특히 선거(1971년 4월 27일) 직전에 열렸던 4월 18일 장충단 유세를 통해 100만 청중을 불러 모아 박정희 후보측을 바짝 긴장시켰다.
이때 등장한 것이 레드 콤플렉스, 즉 '빨갱이' 네거티브 선거 전략이었다.
국민 상당수가 엄청난 피해를 봤던 6·25 전쟁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기에 레드 콤플렉스는 핵무기급 위력을 발휘했다.
상대방은 김대중 후보의 '예비군 철폐'주장을 북쪽을 이롭게 하는, 공산당 주장과 같다고 몰아 세웠다.
결국 김대중 후보는 539만표에 머물러 634만표의 박정희 후보에게 무릎을 꿇었다.
◇ 조봉암을 죽음으로 몰고간 '빨갱이' 네거티브
1956년의 제3대 대통령 선거는 야당측의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선거 구호와 신익희 후보의 급작스런 사망, 조봉암 후보의 선전 등으로 유명하다.
이승만 대통령에 맞서 민주당 후보로 등장한 신익희 후보는 세몰이에 성공했으나 선거를 10일 앞둔 5월 5일 뇌출혈로 급사했다.
무소속의 조봉암 후보는 216만표를 획득, 504만표의 이승만에게 패했지만 진보 정치인으로 엄청난 표를 얻었다.
이에 위기를 느낀 정권은 조봉암 진보당 당수를 간첩으로 몰고가 사형시켰다.
네거티브도 부족해 아예 제거했다.

◇ '북풍'도 네거티브 단골메뉴, 총풍으로 변신까지
1980년대 들어 대선과 총선 때마다 등장한 단골메뉴는 북풍.
군부 독재를 끝내고 직선제가 재 등장한 1987년 제13대 대선에서 북풍이 등장했다.
대선을 불과 18일 앞둔 11월 29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출발한 대항항공 888기가 인도양 상공에서 폭파되면서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다.
폭파범 김현희가 서울로 압송되는 장면이 TV로 생중계되면서 대선판이 요동쳤다.
이른바 1노 3김(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 나서 한치앞도 바라보기 힘들던 대선판에서 북풍이 몰아치자 보수층이 결집하기 시작해 노태우 후보에게 승리를 안겼다.
이후 1992년 15대 대선을 2달여 앞둔 10월초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 전신)는 남로당 이후 최대 간첩단 사건이라면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을 발표, 또 한번 선거를 출렁거리게 했다.
1997년 16대 대선에선 한나라당 후보 측 관계자가 북한 측에 휴전선에서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총풍사건으로 안보 불안을 자극해 여당 후보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북풍 네거티브 공작의 하나였다.
북풍은 2012년 18대 대선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이른바 NLL 포기 논란으로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지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단독회담에서 NLL을 사실상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고 폭로했다 .
진위 여부를 놓고 여야는 대선 기간 내내 공방을 주고 받았으며 일정부분 선거결과에 영향을 끼쳤다.
이 또한 대선 이후 공개된 대화록에서 NLL을 포기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은 없는 것으로 확인된 전형적인 북풍 네거티브 였다.
◇ '치매' 네거티브까지
'치매'가 네거티브 선거전 단어로 등장한 적 있다.
1997년 15대 대선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김대중 후보는 73세로 고령이었다. 군사정권 시절 납치 등의 후유증도 있었다.
이에 상대방은 '치매에 걸렸다'는 네거티브 공세를 폈다.
한나라당 K의원은 1997년 11월 당원 필승결의대회에서 "국민회의 의원에게 직접 들었는데 김대중 총재가 괌에서 비행기 사고로 숨진 신기하 의원을 회의 중 찾았다"면서 "숨진 신 의원을 찾는 것으로 볼 때 김 총재의 정신이 예사롭지가 않다. 사고가 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김 총재를 대통령으로 뽑아선 안 된다"고 했다.
네거티브 공세에 대해 김대중 후보는 TV토론 때 "내가 치매기가 있어서 신기하 의원을 여러 차례 찾았다는데 그런 일 없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치매기가 있는 모양이다"고 받아 쳤다.
◇ 선거 때 약발 좋은 네거티브는 '불륜' 등 은밀한 사생활
대통령 선거의 경우 불륜 등 은밀한 사생활이 네거티비 소재로 활용되는 예는 상대적으로 드물다.
하지만 국회의원 선거 등에선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일단 '바람 피웠다' '사생아가 있다' '딴집 살림을 한다' '가정폭력' 등의 네거티브 공세에 휘말리면 좀처럼 헤어나기 힘들다.
특히 은밀한 입소문이 무엇보다 강력했던 과거에는 스캔들만큼 상대를 흠집내기 좋은 네거티브 선거운동은 없었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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