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기업 정서를 가진 후보도 있지만, (당선 또는 공약 이행)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해선지 재계에서 반기지도, 고마워하지도 않는 분위기다. 재계는 싸잡아 ‘범죄집단’으로 취급하는 것이 속상하지만 또 어떤 회초리가 나올지 몰라 바짝 엎드려 있는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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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미 산업부 차장 |
지난해 12월 모 기업 임원은 한 정부부처로부터 협찬을 요구하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내년에 우리나라에서 국제기구 연차총회가 열리니 행사 진행을 위한 후원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정부 주최 행사지만 그동안 기업들이 돈을 대왔으니 이번에도 ‘관행’대로 하자는 것이었다. 당시는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위에 10대 그룹 총수들이 총출동해 국회의원들로부터 혼쭐이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으라며 재벌 총수들에게 그 자리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 탈퇴를 반강제적으로 선언하게 하고, 몇몇 총수들은 검찰에 불려다니며 언제 구속될지 모르는 그야말로 살벌한 분위기였다.
더구나 특검이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까지 뇌물로 판단하고, 문화부 전 차관 등 정부 관계자들이 구속까지 된 상황에 기업에 또다시 손을 내밀다니,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기업 관계자는 “국장님, 솔직히 그 연차 총회 후원과 미르재단 후원이 어떻게 다른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돈을 내면 또 청문회에 불려나가지 않을까요”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다시 전화가 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손을 내밀고, 누군가는 고민에 빠져 있을 것이다.
팍팍한 살림에도 경제살리기보다 재벌개혁 공약이 먹히는 것은 그만큼 공정사회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벌만 개혁하면 정경유착의 뿌리가 뽑힐까. 한국의 뿌리 깊은 정경유착 관행은 주고받는 구조에서 비롯됐다. 재벌을 단죄하는 어떤 법과 규제를 만들어놓아도 권력의 압력을 당차게 거절할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재벌개혁 못지않게 권력의 구태, 권력의 칼날을 제어할 장치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김수미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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