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7일 프랑스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를 앞둔 극우 성향의 마린 르펜 후보가 180도 변했다. 1차 투표 하루 만에 자신의 지지기반인 극우정당 ‘국민전선’(FN) 당수직을 전격 사임했다. ‘한쪽’이 아닌 ‘모두’를 주창하기 시작한 것이다. 프랑스의 유럽연합(EU) 탈퇴(프렉시트), 이민 제한과 반(反)이슬람 공약 등 이전에 내건 공약들도 흐릿해지거나 아예 뒤집힐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40세 ‘젊은 중도’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가 결선에서 압도적 표차로 당선될 것이라는 예측에 승부수를 던진 르펜 후보가 극우 색깔을 감추고 사표를 끌어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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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치러진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각각 1·2위로 결선 진출을 확정한 ‘앙 마르슈’의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왼쪽)와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후보가 환호하는 지지자들에게 답례하고 있다. 파리·에넹 보몽=AP연합뉴스 |
르펜 후보는 24일(현지시간) 프랑스 공영방송 ‘프랑스2’에 출연해 당수직 사임을 발표하면서 “나는 이제 FN 당수가 아니다”며 “당론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프랑스 대통령이라면 모든 프랑스인의 대통령이자 모든 프랑스인을 아우르는 존재여야 한다. 행동으로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2011년부터 FN을 이끌다가 유럽 난민 사태로 고조된 반난민 정서 확산으로 득세한 그가 결선을 앞두고 변심한 셈이다.
하지만 AP통신 등은 “극우세력을 멀리하려는 프랑스 국민 정서를 읽고 대중의 반감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1차 투표에서 공화당과 사회당 후보가 결선 진출에 실패한 것은 반기득권 정서가 어느때보다 강하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기존 질서·체계를 부정하는 세력으로의 변신을 노렸다는 것이다.
르펜 후보가 오래전에 당수직 사퇴를 준비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FN을 물려준 그의 부친도 2002년 대선 결선까지 진출했지만 극우세력 집권을 우려하는 정서가 확산하면서 대패했기 때문이다.
르펜 후보는 극우 공약을 강조하던 1차 투표 때와 달리 “국민 보호를 약속할 수 있는 것은 나뿐”이라면서 최근 테러로 급부상한 안보 등 통상적 이슈만 부각하고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여론조사기관 이폽(IFOP)은 결선 진출자가 가려진 후 여론조사를 통해 결선에서 마크롱이 60%, 르펜이 40%의 득표율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르펜 후보는 그럼에도 “이길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르펜은 경선 초기부터 가장 이상적인 결선 상대로 마크롱을 꼽았다”며 “‘민중 후보’를 자처한 르펜은 마크롱을 ‘거만한 엘리트 출신의 전직 은행가’라고 지칭하며 공격해왔다”고 소개했다. 신문은 “르펜은 1차 투표에서 사장된 공화당 보수표를 모으고 싶어 한다”며 “극우 성향의 공약들도 일부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주류 후보들 간의 대선 이후 치러질 총선도 변수다. 하원 의석이 없는 ‘앙 마르슈’의 마크롱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하원 577석 중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면 정국 주도권을 잃는다. FN도 상·하원 각각 2석뿐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기존 정치권과의 협력이 필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1차 투표에서 패한 프랑수아 피용(공화당), 브누아 아몽(사회당) 후보와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마크롱 지지를 선언했지만, 총선 전략에 따라 변화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두 후보가 주창한 정치 대변혁도 쉽게 실현되기 힘들 것이라는 회의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재영·이희경 기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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