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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고 떠도는 청춘들… 공허한 주거 공약(空約)에 '한숨'

입력 : 2017-04-30 13:56:09 수정 : 2017-04-30 13:5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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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160〉 공약
# 좁거나 나쁘거나, 집 아닌 집, 고시원


얼마 전 고시원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찍은 사진을 공개한 청년의 이야기가 화제가 됐다. 좁은 복도에 흩어진 신발들, 겨우 몸을 누인 자리 주변을 성벽처럼 둘러싼 살림살이와 짐들은 지·옥·고(지하, 옥탑방, 고시원을 뜻함)를 떠도는 고단한 요즘 젊은이들의 삶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작가 자신을 포함해 평범한 학생이나 직장인들의 삶의 터전이 된 고시원 풍경을 담은 사진들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5월 초 국회의원회관에서 ‘고시텔’이란 제목으로 전시된다고 한다.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다. 어느 날 사무소 이메일로 인턴 지원서가 하나 도착했다. 열어보니 뜻밖에도 외국인 학생이 보낸 것이었다. 스코틀랜드 어느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는 E라는 학생인데, 여름방학 기간 동안 우리 사무소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내용은 둘째 치고 일단 한국어로 적어 보냈기에 아마도 한국인 친구가 대신 써줬거나 구글 번역기를 돌린 것 아닌가 싶어 역시 한국어로 왜 우리 사무소에 지원했는지, 인턴 채용을 해준다면 구체적인 체류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를 물었더니 곧바로 답장이 왔다. 몇 번의 연락 끝에 그 학생은 3개월 동안 일하기로 하고 찾아왔다. 짐작대로 한류에 관심이 많았고 K팝 가수를 좋아해서 열심히 책 한권으로 익힌 한국어로 제법 의사소통도 되는 편이었다.

첫날 일단 숙소를 구해주려고 사무실 근처 적당한 곳을 물색해 보니 고시원이 하나 나왔다. 눈에 익은 곳이다 했더니 얼마 전까지도 수학 보습학원으로 사용되던 건물이었는데, 어느새 리모델링을 거쳐 고시원이 되어 있었다. 칸막이가 된 복도 양쪽으로 방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고, 공용 주방에 냉장고와 밥솥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관리실에 있는 청년은 외국인 여학생을 보고 약간 난처한 기색이 엿보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방으로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10㎡ 남짓한 방에 침대, 책상, 컴퓨터와 욕실이 딸려 있어 이 정도면 제법 머물 만한 곳이다 싶었는데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고시원치고는 시설이 좋은 편이었다. 보증금 없이 한 달에 60만원, 창이 없는 방은 10만원이 더 싸다고 했다. 창문 하나, 햇빛 한 자락, 바람 한 점의 가격이 한 달에 10만원인 셈이었다.

단기간에 머물 만한 곳을 따로 찾기는 어려울 듯해서 일단 그곳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며칠 후 갑자기 고시원에서 전화가 왔다. 인턴 학생에게 밤에 통화를 자제해 줄 것을 부탁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학생이 퇴근 후 집에 있는 가족에게 매일 밤 장시간 전화를 했던 모양인데, 옆방에 사는 젊은 임산부가 너무 시끄럽다고 민원을 넣었던 것이다.

막상 타국에 와서 있자니 고향이 그리운 만큼 목소리도 컸을 것이고, 제대로 된 방음 성능을 갖추지 못한 고시원 칸막이도 문제였을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편안히 발 뻗고 자기도 힘들어 보였던 그 방에서 한참 예민한 시기를 보내고 있을 산모를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고시원에서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고들 한다. 이름만 유물처럼 남은 그 시설의 정확한 명칭은 ‘다중생활시설’인데, 주거시설이 아니라 ‘제2종 근린생활시설’에 속한다. 고시원으로 사용하려는 건축물에는 실별로 취사시설이나 욕조(샤워실은 가능)는 설치할 수 없고, 지하층에는 둘 수 없으며, 실별로 학습자가 공부할 수 있는 시설(책상 등)이 갖춰져야 한다. 세탁실, 휴게실, 취사시설 등은 공용시설로 설치하고 편복도 1.2m, 중복도 1.5m 이상 폭이 되어야 하는데, 그나마 건축법의 사각지대에 있다가 최소한도의 시설 기준이 뒤늦게 마련된 것이다. 그곳은 불이 나고 누가 죽고 무너지고 나서야 뒷북 울리듯 정책이 마련되는 우울한 우리 시대를 비추는 거울 같은 공간이다.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주요 후보들이 주거비용 부담 완화와 신혼부부 공공임대주택 우선배정, 출산 후 임대기간 연장, 신혼부부 주거정착금 지원 등 다양한 주거 공약을 내놓고 있다. 사진은 주택이 밀집한 서울 아현동 일대의 주거지역 모습이다.
# 공약, 정치인의 생각과 정치적인 동반자들을 드러내는 말


내 기억에 처음으로 대통령선거라는 것을 경험한 것은 1971년이었다. 대통령을 박정희 말고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조금 어리둥절했다. 그때 김대중이라는 사람은 신민당 후보로 기호가 2번이었는데, 학교 가는 건널목 가운데 붙어있는 현수막에 ‘이번에는 2번 대중은 김대중’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던 것을 본 기억이 생생하다. 친구가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김대중은 나쁜 사람’이라고 하기에 하굣길에 2번 후보의 벽보 앞에서 초등학생 여럿이 모여 ‘비난’을 하기도 했다. 그러고는 신이 나서 집에 가서 그날의 무용담을 이야기했는데, 대학생이었던 누나가 평소답지 않게 친절한 음성으로 그런 게 아니라며 나름 열심히 나의 의식을 개조해줬다.

물론 김대중은 그 선거에서 졌고 이후 다시 대통령 선거라는 것을 경험하기까지는 한참 걸렸다. 나는 벽보에 대고 욕을 한 것이 내내 미안했고, 언젠가 그가 대통령이 꼭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그가 오랜 시간 재야인사를 거치고 야당당수를 거쳐 1997년 대통령이 되었을 때는 정말 기뻤다. 그렇게 기쁘기는 첫 아이가 태어날 때 이후 처음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김대중이 대통령후보로 출마했을 때, 누나를 제외한 집안의 모든 어른들이 그를 싫어했다.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너무 말을 잘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빨갱이라고,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논리를 가져다붙이며… 그러다보니 말을 잘 못하고 남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도, 심지어 말을 잘 못하는 것은 사람이 진중하기 때문이라고 위안하는 사람들도 있다. 뇌는 빌려오면 된다는 사람은 곳간을 거덜 냈고, 말을 안 해도 백만 볼트가 흐르던 사람은 곳간을 털어갔다. 그뿐이겠는가…

말은 그 사람의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고, 정치인의 말은 자신의 생각뿐이 아니라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정치적인 지향점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그리고 그런 말은 공약이 되어 정치적 용어로 치환되며 우리 앞에 드러난다. 우리는 정치인의 말을 들으며 그의 인간됨을 판단하게 되고, 공약을 통해서 ‘그들’의 꿈을 듣게 된다.

유례 없이 단기간에 대선이 진행되다 보니 촛불을 들었던 시간에 비해 다음 대통령의 자격을 검증할 시간이 무척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그들의 말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어떤 꿈을 꾸고 있는 것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이 내놓았던 이런저런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제대로 책망을 하는 사람도 없다. 오히려 약속을 지키려 하는 사람이 좀 정치적이지 못한 벽창호가 될 판이다. 연일 나오는 뉴스에서는 내가 듣고 싶은 말들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이제라도 한 사람, 한사람의 말을 좀 제대로 들어보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어, 그들이 내놓은 말, 공약을 한번 더듬어 봤다.

먼저 각 후보의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니 기대처럼 공약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되어 있지는 않았다. 후보별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공약’을 찾아 읽어보니, 안보나 일자리 문제 등 모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슈를 앞머리에 두고 있었다. 국민들의 삶의 질, 특히 건축가의 입장에서 볼 때 의식주 중에서도 주거에 대한 공약들이 과연 어떻게 마련되어 있는지 비교해 보니, 무척 흥미로운 부분들이 보였다. 


최소한의 생활 공간을 갖춘 고시원의 정확한 명칭은 ‘다중생활시설’이다.
심규동 작가 제공
# 삶의 질과 수요자를 위한 주거공약이 되기를

문재인 후보 측의 주거 공약은 일단 청년에게 힘이 되는 주거비용 부담 완화, 즉 청년·신혼부부의 집 걱정, 임대료 걱정을 해결해 준다는 데 힘이 실려 있다. 신혼부부에게 공공임대주택 30%(20만호) 우선배정, 출산 후 임대기간 연장, 저소득 신혼부부에게 ‘신혼부부 주거정착금’ 지원(2년 한시), 신혼부부 대상 ‘생애최초 전월세 보증금 융자’ 프로그램 확대, 월세 30만원 이하 셰어하우스형 청년임대주택 5만실 공급, 교통이 편리한 대도시 역세권에 시세 이하 청년주택 20만실 확보, 대학 기숙사 수용인원 5만명 확대(수도권에서 3만명), 셰어하우스용 청년임대 주택 보급 등이 포함된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청년층이라고는 하나 대학생, 신혼부부 대상 주거대책에 집중하다 보니 다른 계층, 특히 노인주거 대책은 별다를 게 없었다. 굳이 대도시 역세권, 혹은 대학생 기숙사에 집중한 것도 지역적 형평성과 대학보다 일터로 간 청년층에 대한 배려 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홍준표 후보의 공약은 청년 및 신혼부부에게 100만호 주거지원, 상경 대학생용 기숙사 건립, 홀로어르신의 활기찬 노후생활 지원을 위해 공동생활 홈을 전국 확대하고, 도배·장판·화장실 보수 등 주거 환경 개선 사업을 펼치겠다는 것 등인데 원론적인 접근 정도에 머무른 듯했다. 통계청에 의하면 2016년 결혼 건수는 28만여건이고 점점 줄고 있다고 하는데, 100만호 같은 수치는 임기 중 결혼하는 신혼부부 주거의 대부분을 정부가 책임지겠다는 무모한 약속이 되는 셈이다.

안철수 후보는 주거와 관련해서 10대 공약 안에 별다른 언급은 없었다.

유승민 후보는 ‘1~2인 가구시대에 맞춰 소형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저소득층 주거복지를 강화하겠다’는 것이 주요 공약 중 하나였고, 그에 따라 무척 상세하고 진지한 접근을 하고 있다. 1인 가구 증가에 따라 변화하고 있는 주택 수요구조에 맞추어 소형주택 공급을 확대(2015년 1~2인 가구 비중은 53.3%)하고, 전체 주택의 약 50%를 차지하는 빈집 및 20년 이상 노후주택을 개량하며 청년·신혼부부·독거노인 등 저소득층의 주거비용을 경감하는 등 주거복지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공공분양 주택 최대 50% 이상을 1~2인 가구에 우선 공급하고, 민간 소형주택 건설 의무 비율을 부활(20% 의무가 2014년 폐지됨)하며, 1~2인 가구가 실거주 목적으로 60㎡ 이하의 소형주택 구입 또는 분양 시 취득세를 전액 면제하거나 대출 금리를 인하하는 등 공급과 수요에 대한 대책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었다. 청년층 1~2인 가구 주택을 2022년까지 15만호, 공공 실버임대주택 5000가구, 기존 빈집 및 노후주택 재건축으로 도심에 청년 및 신혼부부를 위한 도심 주택 수요를 확보하고 청년 대상 셰어하우스(share-house), 코워킹(co-working)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한다는 것도 무척 구체적인 대안으로 느껴졌다.

심상정 후보의 주거 공약은 더 폭이 넓고 더 자세하다. 여성 안심주거 환경으로 개선하기 위해 소형임대주택 임대사업자가 범죄예방환경 설계시설 신설 시 보조금 지원 및 세제 혜택 부여, 여성 홈 방범서비스에 대한 국고지원 확대, 여성안심주택을 확대한다는 것은 타 후보의 공약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부분이다.

또한 농어촌지역 주거 활성화를 위해 중·고등학교에 공립기숙사를 설치하고, 독거노인 공동 거주 마을에 공동생활주택을 보급한다는 것,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연간 15만호 이상 반값임대주택 공급 및 장기공공임대주택 비중 12% 확보, 1인 가구 맞춤형 소형임대주택 확대, 사회주택공급 특별법 제정, 대학생 주거수당 월 20만원 지급, 기숙사 수용률 30% 이상 의무화, 전월세 상한제 도입, 표준건축비 도입, 후분양제(공정 80% 도입), 공공실버임대아파트, 장기요양 주거지원급여 신설, 1인 가구 맞춤형주거, 장애인 체험홈, 자립주택, 소수자인권 존중 등 다양한 정책을 통해 소외되는 이 없이 모두의 인권이 존중되는 나라를 꿈꾼다는 인상을 받았다. 

공약은 공허한 약속이라고 자조적으로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 지킬 수 없는 선거용 언사라는 말이다. 그러나 대통령을 뽑는 데 그 사람의 정책을 들어보지도 추궁해보지도 않고 그냥 ‘좋아서’라고 말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에서 크게 벗어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선호나 흐름에 쓸려가지 말고 나라를 통치하겠다는 사람의 생각을 들어보고, 어떤 방식으로 그 생각을 펼칠지에 대해 우리 모두가 귀를 기울이고 자세히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선거는 5년에 한 번 오는 기회이다. 거대한 그림과 더불어 점점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는 삶의 굴곡에 맞는 구체적인 정책을 요구하고 실천하게 하는 유권자의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임형남 가온건축 공동대표·‘내가 살고 싶은 작은 집’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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