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코앞이지만 노동정책에 관한 얘기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최저임금 1만원’은 누구 한 사람만의 일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 알바를 해야하는 청년들에겐 생계가 걸린 문제입니다.”(취업준비생 조만성(25)씨)
‘근로자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오후 2시 서울 강남역 11번 출구 앞. 하얀 가면과 함께 ‘시급하다 시급만원’이 쓰여진 노란 티셔츠를 입은 앳띤 얼굴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이들은 아르바이트 노동환경 개선과 최저임금 인상을 촉구하고 있는 알바노조 소속 청년들이다. 알바노조는 이날 서울 강남구 BGF리테일 본사 앞에서 시작해 서초동 삼성사옥까지 ‘알바들의 얼굴 없는 시위’란 이름으로 도심행진을 벌였다.
맥도날드 양재점에서 일하고 있는 박준규(32)씨도 이날 노란 티셔츠를 챙겨 시위에 나섰다. 행진 도중 마이크를 잡은 그는 “알바 없이는 기업도 없다. 알바 환경 개선은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비용절감 압박 등 위에서부터 ‘후려치는’ 고용 문화가 알바생들을 울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날 참가자들은 ‘최저임금 1만원이 되어야하는 이유’란 질문이 적힌 손팻말에 저마다의 이유를 적었다. 팻말에 ‘우리에겐 생존이다’라고 쓴 대학생 김광원(24)씨는 “대학생을 포함해 20대 대부분이 알바를 해야만 생계를 잇는 상황”이라며 “부품처럼 쓰고 버리는 일이 빈번한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집회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청년층을 중심으로 ‘최저시급 1만원’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뜨겁다. 장기 불황과 역대급 취업한파가 계속되면서 청년세대에서 아르바이트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만큼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임금이 보장돼야한단 것이다. 이에 더해 알바생을 소모품쯤 여기는 기업들의 인식이 개선돼야한다는 지적도 높다.
1일 아르바이트 전문포털 알바천국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 알바생들이 열악한 근로환경에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가 알바하기 좋은 나라인가’라는 질문에 알바생 471명 중 ‘그렇다’는 응답은 40명(8.4%)에 그쳤다. 71.9%가 ‘아니다’라고 답했고, ‘모르겠다’는 응답이 19.6%였다.
임금체불, 무급노동, 근로계약 미준수 등 열악한 고용환경 탓으로 풀이된다.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 있냐’는 질문에 66.4%가 ‘그렇다’고 응답했는데, 알바생들은 근로계약서 미작성(17.9%), 추가수당 미지급(14.5%), 최저임금 미지급(12.4%), 시간 꺾기(11%), 인격모독 및 폭력(10.3%), 부당해고(7.1%) 등에 시달린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실업 문제가 갈수록 악화하는 가운데 ‘최저임금 1만원’은 청년들의 생계와도 연결된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알바생 월평균 소득은 67만6893원이었는데, 1인 가구 월 생계비 168만원(2016년 최저임금위원회)에 턱없이 모자른 금액이다. 더구나 알바 소득의 절반 가까이가 월세(서울 33㎡ 이하 원룸, 평균 45만원)로 지출되는 상황에서 최저임금 1만원은 ‘최소한의 삶’을 살기 위한 조건이란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날 시위에 참가한 청년들 역시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되어야하는 이유로 ‘사람답게 살기위해서’, ‘보증금이 비싸서’,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춥고 배고파서’ 등 경제적 이유를 주로 꼽았다. 노조원은 아니라는 한 대학생 참가자(23·여)는 “임금인상이 쉽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면서도 “밑바탕에서부터 목소리를 내야 차츰차츰 사회가 바뀌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다만 최저임금 1만원과 관련해 당장은 쉽지 않다는 목소리가 높다. 중소기업과 개인 사업자에 대한 보호망 없이는 되레 일자리가 줄거나 노동강도가 높아지는 등 부작용으로 알바생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주요 5당 대선 후보 모두 ‘최저 임금 1만원’ 공약을 10대 공약 내에 포함시켰지만, 모두 2020년 이후를 내다봤다.
최근 알바노조에 가입한 조만성(25)씨는 그러나 “대선 후보 모두 이것저것 이유를 대며 너무 먼 미래의 얘기만 하고 있다”며 “당장 일을 해야하는 청소년들, 청년 노동자에겐 오늘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열악한 고용문화 개선도 시급한 문제로 꼽힌다. 이른바 ‘경산CU편의점알바노동자살해사건’ 이후 불거진 ‘나 몰라라 대응’, ‘뒷북 사과’ 등은 청년들이 처한 환경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평가다. 지난해 12월 경북 경산의 한 편의점에서 알바생 A(35)씨가 비닐봉지값 20원 때문에 흥분한 취객의 흉기에 찔려 사망했지만, CU측은 “법적 책임이 없다”며 사고발생 100일이 넘도록 유족에게 연락조차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알바노조 관계자는 “당장 오늘 모든 게 바뀌지는 않더라도 알바생들의 인권과 고용환경에 대한 지속적인 사회적 관심과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알바는 ‘학생이 용돈 벌려고 잠깐 하는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알바생에 대한 부당해고 금지, 근로기준법 준수, 안전 등은 상식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글·사진=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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