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베끼기·네거티브 성행 탓
‘묻지마 투표’ 되는 일 없어야 이번 장미대선이 ‘깜깜이 공약’ 선거가 될 공산이 크다고 한다. 세계일보가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만들어 4차 산업혁명을 정부가 선도하겠다”는 공약이 어느 후보의 것인지 물었더니 제대로 맞힌 사람이 13.6%에 그쳤다. 이 공약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내건 공약이다. 하지만 응답자의 43%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공약이라고 답했다.
다른 공약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비정규직 고용총량제’ 공약은 ‘비정규직’이라는 용어와 연결시켜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공약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10.8%가 됐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의 공약이라고 제대로 맞힌 응답자는 3.2%에 불과했다. 후보의 이미지만 보고 공약의 주인을 착각한 것이다.
유권자들이 누구의 공약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현상은 후보들의 책임이 크다. 후보들이 서로 공약 베끼기를 경쟁적으로 하다 보니 차별성이 없어졌고, 유권자들은 이미지를 중심으로 공약의 주인을 판단하게 된 것이다.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와 관련해 후보들은 저마다 연금과 수당을 인상하겠다고 약속했다. 소득하위 70% 노인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하는 기초연금을 10만원 올려 30만원으로 올리는 방안은 후보 간 차별성이 없다. 아동수당 월 10만원 지급, 육아휴직 급여 소득대체율 상향, 초등학교 돌봄교실 확대 등 공약에서도 차별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후보들이 네거티브 공세에 치중해 공약에 소홀한 것도 유권자의 공약 혼선을 부채질했음은 물론이다.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치러지는 이번 대선은 선거기간이 짧아 경선과 선거운동이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유권자들은 후보의 성향과 주요 발언을 기준으로 지지 후보를 고르고 있다. 후보의 이미지에 따른 감성투표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유권자가 공약의 주인도 모른 채 ‘묻지마 투표’를 하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다.
대선이 이제 7일 남았다.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정책에 두 눈을 크게 뜨고 어느 후보에게 표를 던질지 고민해야 한다. 누가 무슨 공약을 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면 당선 후 공약 이행 여부에 관심이 생길 수 없다. 당선자의 공약 이행률이 극히 낮은 과거의 관행이 재연되게 된다. 후보들도 포퓰리즘 공약과 거짓 공약을 하더라도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란 유혹을 느낄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실패를 답습하지 않으려면 유권자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최소한 후보들이 무엇을 공약하고 있는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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