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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어린이였다'…대선 후보들이 고백한 '나의 어린시절'

입력 : 2017-05-05 09:00:00 수정 : 2017-05-05 13: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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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슬픔 중 하나가 '자신이 한때 어린이였음을 잊어 버린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어린이는 참으로 찬란한 존재이다. 

대권에 도전장을 낸 후보들 모두 어린 시절이 있었다. 어린이날을 맞아 대선후보들이 털어 놓았던 그들의 어린 시절을 돌아 봤다. 순서는 기호 순이다. 

◆사탕 나눠주던 수녀가 천사같았다는 피난민의 아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주민등록상 생년은 1953년생이지만 실은 1952년 거제도에서 함경도 출신 피난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회상에 따르면 문 후보 부모는 함경도 흥남이 고향으로 1950년 12월 '흥남철수' 때 미군 선박에 몸의 의지해 거제도로 피난 내려 왔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 거제도에서 부산 영도로 이사를 온 문 후보는 "생계를 위해 연탄배달을 하는 어머니를 창피해 한 적이 있었다"며 철없던 시절의 자신을 책망한 적이 있다.

문 후보는 초등학교 수업을 마치면 양동이를 들고 영도 신선성당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나눠주는 구호물자를 받아 오곤 했다.

이 또한 창피해 몹시 싫어했지만 사탕이나 과일을 손에 쥐던 수녀들을 볼 때면 마치 천사처럼 여겨졌다고 전했다.

이를 계기로 문 후보는 영성체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됐다. 사진에서는 아이들 가운데 제일 뒷쪽 맨 왼쪽, 수녀 앞에 서 있는 아이가 영성체를 받을 무렵의 문재인 후보이다.

◆일당 800원 조선소 야간경비원의 아들 홍준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검사 출신이다. 어린 시절 가난에 시달렸던 홍 후보는 집안형편으로 인해 학비가 필요없는 육군사관학교에 합격했지만 이를 포기하고 검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아버지 때문이다.

1971년 육사에 합격한 홍 후보는 아버지가 농협에서 비료 두 포대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자 검사가 되겠다며 법대로 진로를 바꿨다.

경남이 고향인 홍 후보는 초등학교를 5번이나 옮겨다닐 정도로 살림살이가 팍팍했다. 그에게 어린 시절은 가난이라는 기억외 달리 떠오르는 것이 없다 할 정도였다. 

중학교도 장학금을 준다는 말에 대구로 가 영남중·고를 나왔다. 대구에서 공장에 취직한 누나에 의지한 채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홍 후보는 유세도 중 "내 아버지는 일당 800원짜리 현대 조선소 야간 경비원으로 일했다"며 눈시울을 붉힌 바 있다.

거침없는 홍 후보도  가족 생계를 위해 노력했던 어머니 이야기를 할 때면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던 모습을 종종 연출했다.  사진은 경남 창녕의 고향집에서 어머니, 누나와 함께 있던 홍 후보 의모습이다.

   

◆책읽기에 빠졌던 안철수, 아들에게도 존댓말한 어머니 닮아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서울대 의대를 나온 수재이지만 어린 시절 성적은 평범했다.

고교 2학년 때까지 중간 정도의 성적을 유지하다가 고3 때 부쩍 올라 1등을 차지했다.

'깜짝' 1등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독서를 좋아했던, 밑바탕이 다져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안 후보는 초등학생 시절 책을 매일 몇권씩 읽어  학교 도서관의 책을 거의 다 읽었다. 안 후보는 당시를 "책의 페이지 수와 발행 연월일, 저자까지 모두 다 읽고, 바닥에 종이가 떨어져 있으면 그것마저도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활자 중독증이었던 것 같았다"며 "책을 너무 좋아해 사춘기도 없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안 후보는 안랩 최고경영자(CEO)로 일할 때 직원들에게 존댓말을 했다. 이는 어머니의 가정교육 영향이다.

안 후보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늘 존댓말을 했다. 이런 어머니를 보고 자란 까닭에 안 후보는 누구에게도 말을 놓지 않는다.  왼쪽 사진은 초등학교 시절 안 후보인데, 오른쪽 고교 졸업앨범 속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아버지로부터 '의협심, 비굴하지 말라' 가르침 받은 유승민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판사 출신인 유수호 전 국회의원의 2남1녀 중 막내이다. 형은 서울 남부지법원장을 지낸 유승정 변호사, 누나 유진희씨의 남편인 유 의원 매형은 김진기 전 대구고등법원장으로 비교적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사진은  유 후보의 100일 사진으로 어머니에 안겨 있다. 뒷줄 왼쪽이 아버지인 유 전 의원이다. 앞줄에는 왼쪽부터 누나 유진희씨와 형 유승정 변호사.

어린 시절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아버지이다.

유 전 의원은 부산지법 부장판사 시절이던 1971년 대선 부정투표를 주도한 여당 인사에게 실형을 선고했고, 같은해 10월27일 반정부 시위를 이끈 당시 부산대 총학생회장(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을 구속 적부심에서 석방시킨 뒤 괘씸죄에 걸려 1973년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이런 유 전 의원은 유 의원에게 늘 "의협심을 가져라. 절대 비굴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이 말을 듣고 자랐던 때문인지 유 의원은 고비 때마다 고개를 꼿꼿하게 쳐들었다. 

◆야구소녀, 영화광이이었던 심상정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경기도 파주 광탄면 출신으로 2남2녀 중 막내로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휴전선과 가까운 광탄면 도마산초등학교를 다녔던 심 후보는 4학년을 마칠 즈음 자녀들 교육을 걱정한 아버지의 결단에 따라 서울로 이사했다.

자녀 교육에 열정적이었던 아버지로 인해 심 후보의 오빠들은 사교육을 받았다. 이에 반해 심 후보와 언니는 그런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고 한다.

교육열 높은 부모를 둔 심 후보 형제들은 합계 13수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심 후보의 두 오빠들이 각각 4수, 언니가 3수, 심 후보 자신이 재수를 한 것이다. 

심 후보는 충암여중 재학 시절 야구에 빠져  동대문운동장까지 찾아가 보곤 했다. 또 학교기자로 야구선수들을 취재했다.

명지여고 땐 영화에 빠졌고 영어 회화모임을 만들었으나 판에 박힌 듯한 교육체계는 싫어했다.  사진은 여고 시절 심 후보(오른쪽)와 친구의 한 때를 담은 모습이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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