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안 후보들이 즉답을 피한 것은 김 총장이 이명박정부와 관련한 수사에 적극적인 반면 ‘정윤회 문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의혹을 비롯한 박근혜정부의 수사에선 권력의 눈치를 봤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한 인물이라는 사실이 거부감으로 작용했을 법하다. 2015년 12월 임명된 김 총장의 임기는 올해 12월1일까지다.
검찰총장 2년 임기제는 1988년 검찰청법 개정을 통해 처음 도입됐다. 검찰의 중립성을 보장해 권력의 눈치를 보지 말고 공정하게 검찰권을 행사하라는 취지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하지만 그런 대원칙은 번번이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이후 5번의 권력교체기에 총장의 임기가 채워진 적이 한 번도 없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 검찰총장은 잔여 임기에 상관없이 유·무형의 압력으로 옷을 벗었다.
권력을 손에 쥔 정권이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검찰총장을 교체하는 것은 한국 검찰의 흑역사나 다름없다. 그러고도 정치권은 검찰을 권력의 시녀라고 자주 삿대질을 한다. 제임스 코미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최근 하원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캠프인사들과 러시아 간 내통설을 수사하고 있다고 폭탄 발언을 했다. FBI가 대통령을 겨누는 수사가 가능한 이유는 FBI 국장에 대한 철저한 임기보장 덕분이다. 파렴치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면 임기 10년이 법적으로 보장된다. 미국의 이런 모습을 부러워하면서 검찰총장의 임기조차 지키지 못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검찰이 봉사하는 대상은 권력자가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이다. 정치권에서 청와대 파견 검사까지 폐지하라고 주장한 것도 공정한 검찰권 행사를 염원하는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뜻일 것이다. 정치권력이 검찰총장을 중도에 갈아 치우는 것은 검찰을 자기 쪽에 줄을 세우겠다는 의중으로밖에 볼 수 없다. 검찰의 중립성에 역행하는 이런 구태야말로 시급히 청산해야 할 적폐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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