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페미니스트 슐라미스 파이어스톤(Shulamith Firestone)은 여성해방을 위한 수단으로 ‘인공자궁’을 말했다. 임신이 여성의 몸을 떠나 이뤄지고, 여성이 출산·육아로부터 벗어날 때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극단적인 주장이긴 하나 출산과 육아가 여성의 삶에 가져오는 파장을 고려해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측면이 있다.
지난 3월 취업포털 ‘커리어’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기업 인사 담당자의 44.4%가 채용 시 ‘여성보다 남성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여성을 꺼리는 이유는 ‘여성의 임신, 출산, 육아가 걸림돌이 되기 때문’(62.5%)이었다.
덕성여대 정외과 류선우 |
‘경력단절여성’은 많지만 ‘경력단절남성’은 없다. 여성은 출산, 육아, 가족돌봄, 자녀교육을 이유로 경력단절을 겪지만 남성은 같은 이유로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다. 가사와 육아가 여성의 일이라는 인식 속에 여성은 남성과 달리 일과 가정 중 하나를 선택하길 강요받는다.
한국은 당장 올해부터 생산가능인구 감소, 신생아수 감소, 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다. 정부는 저출생을 국가위기로 규정하고 지금까지 100조원 넘는 예산을 투입해왔다. 효과는 없었다. 문제 인식부터 잘못됐기 때문이다.
‘여성의 고스펙이 저출산 원인’이라는 발언이나 ‘출산지도’ 따위에서 나타나듯이 저출생 정책에서 여성은 사람이기 이전에 ‘노동력생산을 위한 출산도구’ 정도로 여겨져 왔다. 이런 접근법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앞으로 몇백조원을 더 쏟아부어도 저출생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왜 여성의 혼인율이 전 연령층에서 떨어지고 있는지, 여성들이 왜 점점 출산을 기피하는지 제대로 봐야 한다.
여성이 비혼·비출산을 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라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서다. 고스펙 여성이 문제라는 국책연구위원의 발언 중 “여성의 교육수준이 상승함에 따라 하향선택결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맞다. 교육을 통해 여성들은 삶의 목적이 ‘남자한테 시집가서’, 좋은 ‘엄마’, ‘아내’, ‘며느리’가 되는 게 아님을 안다. 자아를 실현하며 사는 게 사람의 삶이라고, 우리도 ‘사람’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결혼하면 독박육아, 독박가사로 나를 잃어야 하는 현실 앞에 비혼·비출산은 당연하고 합리적인 선택이다. 여성의 고스펙이 문제가 아니다. 열심히 살아온 여성이 결혼과 출산을 하면 쌓아왔던 모든 걸 포기해야 하는 사회가 문제다.
출생률을 올리는 해답이 여기에 있다. 여성이 결혼하고 애를 낳아도 ‘엄마’ 말고 ‘사람’으로 살 수 있게 해주면 된다. 남성이 아빠이면서 평범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여성도 엄마이면서 사회생활을 지속할 수 있게 해주면 된다. 모성애라는 신화 아래 이제껏 여성에게 요구해온 희생을 덜어주면 된다. 출산·육아·가사를 여성만의 일이 아닌, 여성과 남성 모두의 일로 만들어야 한다. 인식을 바꿔야 한다. 성평등이 저출생 문제의 답이다.
이봉주 교수는 아동복지 전문가로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제5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민간위원 간사와 한국사회복지학회 회장도 맡고 있다. 미국 보스턴대학교 사회사업대학원 조교수, 미국 시카고대학교 체핀홀 아동복지 연구소 부교수, 한국아동복지학회 학회장, 정부업무평가위원회 위원, 한국사회복지행정학회 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덕성여대 정외과 류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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