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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플러스] “우리는 투표하러 동네 사랑방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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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5-07 19:29:01 수정 : 2017-05-07 20:3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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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카페서 ‘한표’… 공공시설만으로는 한계… 소중한 권리 행사 눈길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2동의 자동차 썬팅가게 ‘루마썬팅’은 투표날만 되면 문전성시를 이룬다. 가게 안에서 시작된 사람들의 줄이 인도까지 이어지지만, 정작 차는 한 대도 보이지 않는다. 평범한 이곳은 선거가 있을 때면 ‘남가좌2동 제2투표소’로 변신한다. 지금까지 2012년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 2014년 지방선거, 2016년 국회의원 선거 등 총 4번의 선거를 치렀다. 이번 대선에서도 투표소로 활용된다. 가게를 운영하는 이종찬(58)씨는 “‘왜 휠체어로 접근할 수 없는 곳에 투표소를 설치했느냐’는 항의가 적지 않아 5년 전부터 주민센터에서 우리 가게를 투표소로 빌려달라고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투표를 하러 오는 주민들이 ‘이런 곳에서 투표를 할 수 있냐’며 신기해하곤 한다”며 “그래도 투표율은 전국 평균 투표율보다 높은 편”이라고 귀띔했다.


미용실·카페·웨딩홀·태권도장·병원…. 오는 9일 대선 투표소가 설치되는 이색 장소들이다. 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선거 등의 투표소는 학교와 동주민센터, 공공기관이 소유·관리하는 건물의 1층 또는 엘리베이터 등 편의시설을 갖춰 접근 가능한 층에 설치된다. 그러나 해당 지역에 투표소로 활용할 만큼 넓은 공공기관이 없거나 장애인 편의시설이 설치된 곳이 없을 경우 선관위는 민간 사업장을 빌려 투표소로 사용한다.

지난해 4월13일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진행 중인 이색 투표소의 모습. 서울 강서구 화곡동 ‘동국태권도체육관’.
연합뉴스
세계일보 취재진이 선관위 선거통계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대선 당일 서울 시내에 설치될 2249개의 투표소 중 공공기관과 아파트를 제외한 민간 시설에 설치되는 투표소는 총 83곳(3.7%)으로 집계됐다. 은행이 28곳으로 가장 많았고, 웨딩홀 13곳, 주차장 7곳, 자동차대리점과 학원이 각 4곳, 카페와 병원이 각 2곳 등이었다. 영화관과 호텔, 쇼핑센터, 종친회(순흥 안씨) 건물의 강당 등도 있다. 서울시 선관위 관계자는 “보통 선거인 수 5000명을 기준으로 투표소를 만들고 투표소 위치가 멀어 불편하면 추가로 설치한다”며 “공공기관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적이 있어 민간 시설을 빌린다”고 설명했다.

투표소로의 변신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투표 당일은 물론 투표 준비를 위해 전날에도 해당 공간을 거의 쓰지 못한다. 루마썬팅은 투표에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 투표 전날부터 공구가 있는 선반에 모두 가림막을 설치한다. 업체 입장에서는 이틀 장사를 포기해야 하는 셈이다. 3년째 광진구 군자동의 투표소로 쓰이는 쉐보레 동서울대리점은 투표 전날 직원들이 매장에 있던 차를 전부 밖으로 옮기고 매장을 정리한다. 투표 당일에도 지원 업무를 하러 일부 인원이 돌아가면서 출근한다. 

광진구 군자동 ‘기아자동차 대공원대리점’
이런 수고를 감내하면서까지 장소를 제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당 업체 관계자들은 ‘보람’이라고 입을 모았다. ‘선거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장소를 내어준다는 것이다. 장로진 쉐보레 동서울대리점 대표는 “임차료나 들어가는 수고만 생각하면 장소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 낫다”며 웃었다. 그는 “새벽에 출근해 준비하다 보면 피곤할 때도 있다”면서도 “투표를 하려고 오전 6시 전에 와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면 투표가 정말 소중한 권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권리 행사에 도움을 줄 수 있어 뿌듯하고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7년째 투표소로 운영 중인 강서구 화곡동의 동국태권도체육관 김용래 관장은 ‘투표 전문가’가 됐다. 그는 “신경 쓸 일이 많지만 투표하러 온 사람들이 ‘고생한다’, ‘고맙다’고 하는 말에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서대문구 홍은2동의 ‘최정아 헤어뉴스’.
주민들의 반응도 좋다. 10년째 동네 미용실 ‘최정아헤어뉴스’에서 투표를 한다는 최모(60·여·서대문구 홍은동)씨는 “미용실이 30년 넘게 한자리에서 영업한 곳이라 평소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한다”며 “투표소가 친근하다 보니 선거에 관심도 더 생기고 꼭 투표하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투표 장소를 섭외해야 하는 일선 주민센터 직원들은 이 같은 협조에 큰 고마움을 나타냈다. 민간 시설은 투표소 지정을 강제할 수 없기 때문에 선거 때마다 투표소를 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관료로 30만원가량이 지급되지만, 많은 이들이 번거롭다는 이유 등으로 거부한다. 성동구 성수1가2동 주민센터 관계자는 “주민센터가 공사를 하게 돼 새 투표소를 구하려고 대학 학장과 몇몇 건물주를 만났지만 시설물 훼손 우려가 많아 빌리지 못했다”며 “여러 곳을 돌아다닌 끝에 간신히 동네 카페에 투표소를 마련했다. 선뜻 장소를 내어줘 매우 고마웠다”고 말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투표 공간을 내어준 이들은 선거의 숨은 조력자”라며 “투표의 중요성에 공감한 이들의 협조 덕분에 선거 준비를 원활히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창훈·안승진·김유나 기자 coraz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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