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완화·구조조정 가속화등 큰틀에서 해법 찾아야
대선이 끝난 직후 새 정부가 해결해야 할 경제 현안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출산률 저하로 인한 인구감소·급격한 노령화·갈수록 심각해지는 양극화 등으로 인해 사회 성장동력이 거의 멈춘 상태다.
북핵 위협과 중국과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갈등, ‘트럼프 리스크’ 등 대외환경은 최악이다.
또 주요 산업의 국제경쟁력이 극도로 약화되고 있고 경기침체로 인한 내수 위축 또한 심각한 상태다. 어느 것 하나 녹록한 것이 없다. 다행히 수출은 연초부터 뚜렷한 회복세를 나타냈으나 그 밖의 부문에서는 답보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잠재성장률 회복 △일자리 창출 △가계부채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4차 산업혁명 등 대내외 굵직한 현안과 맞서 싸워야 한다.
◇ 성장률 끌어내리는 소비심리 위축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소비심리 위축에 따른 경제성장률 저하다. 장기 저성장 기조가 지속되면서 향후 경기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분기별 전기 대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지난해부터 1%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분기 0.5%에서 2분기 0.9%로 약간 상승했으나 3분기 다시 0.5%로 떨어져 4분기에도 0.5%가 유지됐다. 그나마 올해 1분기 들어 0.9%로 다소 회복세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분기별 전기 대비 경제성장률이 최소 1%를 상회해야 한다”며 “그래야 연간 경제성장률 3%선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4%를 노려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성장률의 부진은 주로 심각한 소비심리 위축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1분기의 전기 대비 민간소비 증가율(한은 통계)는 -0.1%라는 충격적인 수치를 나타냈다. 2분기 0.8%, 3분기 0.6%로 약간 나아지는 듯 했지만 다시 4분기 0.2%로 하락했다. 올해 1분기도 0.4%로 매우 부진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경기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해 급증한 가계부채로 인해 늘어난 원리금 상환부담도 가계의 소비를 제약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민간소비와 직결되는 서비스업은 특히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전기 대비 서비스업 성장률은 지난해 1분기 0.4%에서 2분기 0.5%, 3분기 0.6%로 조금씩이나마 증가했지만 4분기 들어 다시 하락 반전했다. 지난해 4분기 0.2%에 이어 올해 1분기 0.1%를 기록, 극도로 부진한 상태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소비가 당장 살아나긴 어려울 것"이라며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소비를 꺼려하는 분위기여서 경제성장률에 단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정 연구위원은 “구조적인 측면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며 “임금피크제를 동반한 정년 연장, 규제 완화, 기업구조조정 등의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진혁 한국은행 조사총괄팀 과장은 "소비가 부진한 상태이지만 4월 소비자심리지수는 꽤 나아진 모습"며 “경기가 좋아질 것이란 기대감이 형성되면 소비심리도 회복될 것”이라며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현재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크게 훼손된 상태다. 한은은 2010년대 초반 3.6%를 기록했던 잠재성장률이 이미 2%대로 낮아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LG경제연구원은 오는 2020년 이후 잠재성장률이 1.9% 수준까지 내려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잠재성장률이란 한 나라의 경제가 현재의 여건하에서 보유하고 있는 자본, 노동 등의 생산요소를 완전고용한 상태에서 인플레이션 등의 부작용 없이 생산할 수 있는 최대의 생산증가율을 의미한다.
잠재성장률은 지속 성장가능성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국가 경제의 미래를 예상하는데 매우 중요한 수치다. 이 수치가 낮아질수록 국가의 성장잠재력은 약화된다. 즉 미래가 어둡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하락하고 있는 주 요인으로는 소비 부진과 출산률 감소가 꼽힌다. 특히 장기 저성장 기조가 출산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무너진 잠재성장률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신성장동력 창출과 함께 무엇보다 민간소비의 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우리 경제를 옥죄이는 또다른 대내변수중 하나는 지난해말 1344조원까지 부풀어 오른 가계부채다.
김창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가계부채의 총량 자체이 매우 크다”며 “또 지난해말부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연이은 기준금리 인상 등 금리상승기로 접어들었다는 점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은 기준금리가 인상되면 가계의 원리금상환 부담이 급증할 것”이라며 “그로 인해 소비위축, 경기 부진 등이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지만 무조건적인 가계대출 억제라는 현재 금융당국의 접근 방식은 부작용이 더 심각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은행이 계속해서 집단대출을 거절하다 보니 건설사들이 금리가 높은 2금융권 문을 두드리게 돼 소비자들의 이자부담은 높아지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도 “가계대출 총량규제는 건설업 불황을 더 심화시켜 경제성장률에 악영향만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가계 소득을 늘려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상환 비중을 낮추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방안”이라며 “정부는 소득 증대에 진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기용 인천대학교 경영대학장은 가계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 세제 개편을 요구했다. 홍 학장은 “전세금이 크게 오르고 월세가 유행하면서 가계대출 구조가 바뀌고 있다”며 “임대소득에 제대로 된 과세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 수출은 호조세…美 보호무역주의·中 ‘사드 보복’이 ‘걱정거리’
한국 경제의 주요 대외 변수로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와 중국의 ‘사드 보복’이 꼽힌다.
연초 수출은 상당한 호조세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통관 기준 수출액은 510억달러로 잠정 집계됐다. 이는 지난 2014년 10월의 516억달러에 이어 월간 기준으로 역대 2위다.
또 한은은 3월 수출이 503억8000만달러로 전년동월 대비 12.8% 늘었다고 발표했다.
수출이 ‘깜짝 실적’을 보이면서 정부는 올해 수출 증가율 전망치를 연초의 2.9%에서 6~7%로 상향조정할 방침이다.
다만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와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이 잘 나가는 수출에 브레이크를 걸까 염려된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FTA 재협상은 물론 종료 가능성까지 언급하면서 수출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한-미 FTA로 한국만 이득을 보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면서 “최근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는 감소세”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2015년 258억1000만달러였던 한국의 대미 상품무역수지는 지난해 232억5000만달러로 줄었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 점을 들어 미국 정부를 설득할 것”이라며 “재협상 등 다양한 가능성에 대비 중”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는 한국의 수출에 큰 장벽이 되지 않을 것이란 의견도 존재한다.
김문일 흥국증권 연구원은 “원래 무관세였던 반도체는 FTA 재협상 항목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며 “재협상을 통해 자동차 관련 수출 비중이 3.4% 감소한다 해도 반도체 등 전자 상품 수출 비중이 1% 늘어나면 이를 상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또 "미국의 보호 무역주의로 중국 정부는 무역가중 환율 바스켓에 원화를 신규로 편입해 비중을 10.77%로 정했다"며 "위안화 약세가 원화 약세로 연결돼 수출 증대를 이끌어내는 중"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의 ‘사드 보복’은 한국 관광 금지 등 주로 서비스업 측면에서 타격이 크다. 김영준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수출의 25.1%, 관광객의 46.8%를 중국이 차지하는 등 한국 경제의 중국 의존도는 매우 높은 상황"이라며 그 심각성을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은 “다만 한-중 교역구조상 소비재 수출 비중이 크지 않기에 우려보다는 타격이 약할 것”이라면서도 “사드 배치에 따른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이 불이익을 당하거나 관광 산업이 타격을 받을 위험이 높다"고 예상했다.
그는 피해가 예상되는 산업에서는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차이나+1' 등 시장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은 국내 가계부채에 악재지만 수출에는 호재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최근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원화는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원화가 약세를 나타낼수록 수출에는 ‘청신호’다.
홍 연구위원은 “다만 한-미 기준금리 차이가 역전될 경우 외국인 투자금이 대거 유출될 수 있다”며 “국내 금융시장 불안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양호한 외환건성을 유지하고 환율 급변동을 방지하는 적극적인 미세조정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흥국의 금융 불안이 자국 경기의 급락이나 우리나라의 신흥국에 대한 수출 부진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도래…대비책은?
최근 ‘경제 패러다임 변화’가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경제의 구조 자체가 바뀔 것이란 전망과 함께 그동안의 ‘성장 중심 경제체제’가 한계에 부딪혔다는 지적이다.
김영한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은 기존 산업의 효율성을 극대화시켜주는 측면이 강하다"며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어떤 산업적인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지 정부가 구체적인 계획과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대거 사라질 것이란 우려가 많다. 이미 금융보험업 일자리 중 30%가 소멸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85%의 직장인들이 “내 일자리가 위협받을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장기간의 경제불황으로 실업률은 이미 위험수위에 달한 상태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실업률은 4.3%로 지난 2010년 1분기(4.7%) 이후 가장 높았다. 실업률에 소비자물가 상슬률을 더한 경제고통지수(6.4)는 2012년 1분기(6.8) 이후 제일 높다.
청년실업률은 10.8%이며 체감 청년실업률은 무려 23.6%에 달했다. 통계청이 고용보조지표 공식집계를 발표한 뒤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아울러 65세 이상 실업률도 6.1%로 2010년 1분기(6.5%) 이후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자가 공무원 17만명·공공 부문 일자리 81만개 생성을 공약했지만 그걸로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다수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세금으로 만드는 일자리는 결국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라면서 “일자리는 결국 민간이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일자리의 88%를 중소기업이 담당하고 있다”며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중소기업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4차 산업혁명이 꼭 일자리를 증발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상존한다.
홍승필 성신여대 IT학부 교수는 "새로운 산업이 도래하면 없어지는 일자리도 있는 반면 없던 일자리가 창출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무인자동차가 보편화되면 대리운전기사는 줄어들겠지만 위험탐지, 센서 등을 컴퓨팅하는 ICT분야의 새로운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딜로이트컨설팅은 “신산업 조기정착 및 단계적인 자동화가 이뤄질 경우 오는 2025년까지 오히려 새로운 일자리가 68만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신산업 지연 및 전면적인 자동화로 진행될 경우 일자리 164만개가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세계적으로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면서 ‘성장 중심 경제체재’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윤종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는 “OECD 조사결과를 보면 세계 인구의 상위 1%가 전체 자산의 19%를 소유한 반면 하위 40%는 전체 자산의 3%밖에 갖고 있지 않다”며 “‘성장 중심 경제체재’가 가져온 부작용”이라고 지적했다.
윤 대사는 “자산뿐 아니라 소득과 교육의 불평등도 심각해 다수의 사람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경제사회 문제를 고치기 위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며 “생산적인 경제와 포용적인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정부가 일부 유망산업에 대한 집중투자보다는 공정한 경쟁의 틀과 보상체제를 만들었을 때 미래혁신이 일어난다"고 덧붙였다.
일자리 감소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해결책 중 하나로 기본소득 논의도 세계적으로 활발하다. 그러나 논의가 초기 단계라 현실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최창렬 용인대 정치학과 교수는 “기본소득 도입은 ‘복지 사각지대’와 선별적 복지로 인한 저소득층에 대한 낙인효과를 없애는 것이 장점”이라며 “하지만 소요되는 국가 예산이 많다는 부분이 단점”이라고 말했다.
안재성 기자 seilen78@segye.com
주형연 기자 jhy@segye.com
유은정 기자 viayou@segye.com
이정화 기자 jh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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