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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내 한 표의 가치는 돈으로 얼마? 7321원 VS 4716만원

입력 : 2017-05-09 09:00:00 수정 : 2017-05-09 06:3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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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마감일인 지난 5일 서울시 종로1·2·3·4가동 사전투표소가 마련된 종로구청에서 선거사무원이 관외 투표용지 수량을 확인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한표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한다면 얼마나 될까?

국민의 당연한 권리 행사인 만큼 투표의 가치는 돈 주고도 살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다만 여기에서는 수학적으로 고찰해 돈으로는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 알아보고자 다양한 계산방법을 동원해봤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선거 후보는 지난 6일 경기도 안산에서 유세를 하다가 한 표의 가치를 ‘4726만원’이라고 주장했다.

문 후보는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예산을 운용하는 주체라는 점에 주목해 한 표의 가치를 측정했다.
 
그는 “우리나라 1년 예산이 400조원이고 대통령 임기인 5년 동안 대략 2000조원이 사용된다”며 “그 수치를 유권자 수로 나눠 한 표당 4425만원”이라고 논리를 펼쳤다.

문 후보의 계산법을 토대로 좀더 꼼꼼하게 따져보자.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예산 규모는 400조7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앞으로 5년간 예산이 동결된다는 전제 아래 차기 정부는 모두 2003조5000억원의 예산을 쓰게 된다. 이를 중앙선관리위원회가 발표한 19대 대선의 전체 유권자 수 4247만 9710명으로 나누면 1인당 4716만원이 나타난다. 

여기에 추가경정예산이 편성될 수 있고, 해마다 예산이 늘어나는 걸 감안하면 1표의 가치는 4716만원이 넘는 것으로 결론이 나온다.

19대 대통령선거의 첫 사전투표일인 지난 4일 오전 서울역에 마련된 남영동 사전투표소에서 한 유권자가 투표를 마치고 봉투에 풀을 붙이고 있다. 한윤종 기자

◆선거비용으로 본 한 표의 가치

이번 대선에 들어가는 비용 측면으로 따져보면 한표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선관위는 지난 2일 보도자료를 통해 선거관리 물품, 장소 및 시설, 선거에 투입될 인력 등의 예산으로 약 1800억원이 들어간다고 밝혔다. 여기에 정당에 지급한 보조금과 보전비용을 더하면 대략의 선거비용이 계산된다.

선거 보조금을 살펴보면 선관위는 지난달 18일 421억4250만원을 6개 정당에 지급했다. 선거보조금은 정당의 의석 수를 고려한  배분 기준에 따라 나눠졌다. 

여기에 선거 보전금도 고려해야 한다. 이는 대선 후보가 15% 이상 득표 시 선거비용의 100%를, 10% 이상 득표 시 50%를 각각 보전해주는 제도다. 누가 얼마나 득표할지 아직 알 길은 없지만 선관위는 대략 889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치를 잡고 있다. 선거 보전금과 보조금을 더한 이번 대선의 총 비용은 약 3110억원이 된다. 이를 유권자 4247만 9710명으로 나누면 한 명당 7321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국민의 투표 여부와 관계없이 미리 비용으로 잡힌 금액인 만큼 한표 행사를 포기하면 고스란히 날아가는 돈이라고도 할 수 있다. 

투표를 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정치행위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실제로 투표를 하지 않음으로써 낭비되는 비용은 만만치 않다. 이번 투표율이 지난 18대와 같은 75.8%를 기록했다고 가정했을 때 753억의 선거비용이 허공에 버려지게 된다. 인쇄업계에 따르면 투표용지 원가는 12~15원으로 추정되는데, 지난 대선과 투표율이 같을 때 이 용지만 1억2336만원~1억5420만원이 낭비된다고 한다.


◆법원의 판결로 본 한 표의 가치 ‘30만원~200만원’

법원이 한 표의 가치를 매긴 사례도 있다.

법원은 2014년 교육감 선거에서 전산기록 입력 실수로 투표를 못 한 장모씨 부녀에게 정부가 각각 2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같은해 6·4 지방선거에서는 투표 마감 10분 전인 오후 5시50분에 투표소에 도착한 A씨가 담당 공무원의 실수로 투표를 하지 못했다며 3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2012년 치러진 18대 대선 때는 검찰청 담당 공무원의 실수로 유죄로 분류돼 투표하지 못한 박모씨에 대해 1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당시 재판부는 “선관위가 사전에 선거인 명부를 열람해 이의신청을 할 수 있는 절차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박씨의 책임도 있다”며 애초 원고 측이 요구했던 배상액을 낮췄다. 

투표권 침해에 대한 정해진 기준은 없지만 본인 책임에 따라 배상액은 달라졌다.


◆재외국민 투표에서는 한표 행사 위해 1000달러 이상 들기도

지난달 30일로 종료된 이번 대선의 재외국민 투표에는 22만1981명이 참여해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다. 지난 1일 미국에서 사는 한 재외국민은 트위터에 "하루를 다 털어 '1분 투표'를 하고 왔다"며 "투표하는데 1000달러 쓰는 사람도 있는데 이분들 무슨 마음으로 투표하는지 이해한다면 투표 꼭 좀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이 재외국민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가족 단위로 멀리 떨어진 투표소를 찾아 비행기며 교통비와 식사비, 숙박비에 1000달러 이상 쓰는 이도 있다고 한다. 1000달러를 현재 환율로 계산하면 113만2800원으로 적지 않은 금액이다.

◆내 한 표가 결과를 바꿀 수 있을까?

투표소를 찾지 않는 이들은 대개 ‘내 한표가 당선 후보를 바꿀 수 없을 것’이라고 여긴다. 과연 그럴까?

미국의 철학자 윌리엄 맥어스킬은 자신의 저서 ‘냉정한 이타주의자’를 통해 자신의 한 표가 결과를 바꿀 수 있는 확률에 대해 소개했다. 미 정치학자 네이트 실버와 앤드류 젤먼 콜롬비아대 통계학과 교수, 애런 에들린 버클리대 법학 교수가 모여 2008년 미 대선에서 한 명의 투표자가 당선 결과에 미칠 확률을 계산한 결과 6000만분의 1이 나왔다.     

공화당 후보나 민주당 후보가 당선돼 각각 세금감면이나 공공 서비스 확대를 통해 미국의 연간 정부재정 지출이 약 2.5% 효율적이 됐다고 가정했을 때 유권자 한 명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고작 1000달러 수준이었다. 이 논리대로라면 1000달러보다 더 큰 금전적 혜택을 볼 수 있다면 투표를 하지 않는 게 경제적으로는 훨씬 더 나을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기표도장을 손등에 찍어 선거에 참여했음을 보여주는 인증 사진.

그럼에도 역사적으로 '한 표의 기적'은 수차례 있었다. 상대적으로 참여하는 이가 적은 의회 표결에서

1954년 이승만 정권 시절 당시 집권 자유당은 대통령이 3선을 할 수 없는 제한을 없애기 위해 개헌 표결을 강행했는데 통과에 한 표가 모자랐다. 결국 ‘사사오입’의 억지를 내세울 수밖에 없었고, 이는 4·19혁명의 중요한 요인이 됐다. 

얼마 전 대선을 치른 프랑스도 1875년 왕권을 유지할 것인지, 공화국으로 갈 것인지 갈림길에 선 의회 투표에서 353대 352의 단 한 표 차이로 공화국의 길을 걷게 됐다. 

2008년에는 강원도 고성군수 보궐선거에서 황종국 후보가 윤승근 후보를 1표 차로 누르고 당선된 적도 있다.

투표의 금전적 가치는 해석에 따라 7321원부터 4716만원까지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한 표를 얻기 위해 1000만명이 서울 광화문에 모여 촛불을 들었다. 특별한 한 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건 분명해 보인다. 16대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유명한 명언도 있지 않은가.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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