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쌓은 담 허물고 소통과 화해를
“어느 날 만난 우리들, 경계 따라 걸으며/ 서로의 사이에 다시 담을 쌓지요./ 걸으면서 우리들 사이에 담을 두는 거예요.” 각자 자기 쪽에 떨어진 돌을 주워 올리며 균형 잡히고 튼튼하게 담이 만들어지도록 애쓴다. 그러면서 화자는 왜 이 담장이 필요한가 하는 의구심을 이웃에게 표한다. “그쪽은 솔밭이고 내 쪽은 사과밭,/ 사과나무가 경계를 넘어 그쪽 솔방울을/ 따먹을 리 없다”고 그에게 말해 본다. 그러자 이웃은 이렇게 대답한다. “좋은 담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네요.”
화자는 그 말을 수긍하기 어렵다. 왜 좋은 담이 좋은 이웃을 만드는가. 담장이란 젖소 목장에나 필요한 것 아닐까. 여긴 젖소도 없는데 왜 담을 쌓아야 한단 말인가. “도대체/ 이 담으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막자는 것인가/ 누구의 마음을 상할까 겁이 나는가.” 그럼에도 이웃은 아랑곳하지 않고 담을 쌓는데 ‘구석기 시대의 무장한 야만인’처럼 몰두한다. 그러면서 부친에게 들었단 말을 의심도 없이 되풀이 건넨다. “좋은 담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네요.”
‘좋은 담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는 말은 17세기 중엽의 영국 속담이다. 내 일을 잘 하기 위해서나 남의 사생활을 존중하기 위해 적절한 담이 있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을 담고 있는 말일 터이다. 프로스트의 시에서 화자의 이웃이 그런 뜻으로 두 번이나 그 말을 되풀이했는지는 알 수 없다. 시는 줄곧 화자의 생각이나 시선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화자는 담장과 관련한 관습적인 사고, 순응적 태도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담이란 젖소처럼 지킬 게 있을 때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 나아가 소유가 담을 쌓게 한다는 생각, 이웃을 존중하고 적절한 거리를 두려는 것보다는 자기 것을 지키고자 하는 닫힌 소유욕이 담을 쌓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에, 담 안에 배타적으로 소유하기보다는 열린 소통을 생각한다면, 담을 쌓지 않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을 견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도 언젠가부터 이웃끼리 담을 허물고 그 경계 공간을 공동으로 잘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아예 담을 두지 않는 것을 규약으로 정한 주택단지도 늘어난다. 프라이버시 손상을 일부 감수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에 기초한 발상일 게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대선 기간 동안 서로 자기 표를 구하기 위해 나름의 담장을 높이 쌓아 올렸다. 그러면서 담 너머 이웃을 폄훼하고 담 안의 주장만을 앞세우기도 했다. 마침내 오늘, 결전의 날이 밝았다. 이제 억지로 쌓아올린 담을 허물어야 하지 않을까. 허심탄회한 소통과 화해로 열린 협치의 묘미를 살려야 하지 않을까. 좋은 담이 좋은 이웃을 만들 수도 있지만, 불필요한 담을 허물었을 때 더 좋은 이웃을 만들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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