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광은 누구인가
한국에서 최근 몇 주일을 보낸 뒤 미국으로 돌아와 보니 미국인들이 북한에 대해 ‘패닉’ 상태에 빠져있었다고 수키 김이 진단했다. 북한이 극단적인 용어를 동원해 공포를 조성해온 것은 익히 아는 일이지만 이번에는 ‘전쟁광’의 목소리가 미국에서도 터져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은 북한보다 미국의 ‘기괴한 짓’에 더 놀라고 있다고 그가 주장했다.
한때 한국과 미국이 한편이 돼 북한과 맞서는 남·북한·미국간 삼각 관계가 형성돼 있었으나 이것이 이제 ‘북한 대 미국’, ‘한국 대 미국’의 양대 적대 관계로 퇴행했다는 게 그의 평가이다.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 적대감을 드러내는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의 부주의한 발언 때문이다. 자부심이 강한 한국인은 한국을 억압하는 얘기를 들으면 결코 잊지않고, 용서를 하지 않는다고 김씨가 지적했다.
트럼프는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은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중국의 일부였다는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폐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비용 10억 달러 요구 등으로 한국인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미국의 갑질
한국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계속되는 한국 냉대 발언을 “한국을 ‘호구’ 로 여기는 미국의 ‘갑질’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그가 진단했다. 특히 9일 투표가 실시된 한국의 대선 정국에서 트럼프 발언이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는 “트럼프의 모욕적인 언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몰락한 직후에 나왔다”면서 “박 전 대통령의 침몰은 트럼프와 같은 힘세고, 부유한 부류의 괴롭힘에 대한 반란이었다”고 주장했다. 한국인의 트럼프에 대한 반감이 오랜 반미 감정과 합성되는 현상이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지난 2002년 여중생 효순, 미선 양이 미군 차량에 의해 압사당한 뒤에 한국 사회를 강타했던 반미 감정이 트럼프와 사드 배치 문제로 인해 한국에서 되살아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그가 주장했다. 한국의 대통령 선거일이 열흘도 남지 않는 시점에 트럼프가 한국에 사드 비용 10억 달러를 내라고 한 것은 한국인의 뺨을 때린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트럼프는 외국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이 싫어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초청했고,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일본, 중국에서와는 달리 한국에서는 외무장관과 만찬도 함께하지 않았다. 김씨는 “한국인들은 이 모든 일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고, 이것이 집단 반미 감정으로 이어져 시위가 벌어지면 미국이 충격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불안한 대북 정책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북한 문제 해결에 협조하지 않으면 미국이 직접 나설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시 주석과 만난 뒤에는 시 주석을 극찬하면서 북한이 미사일 발사 시험을 하자 ‘매우 존경받는 지도자’인 시 주석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그런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면담이 성사되면 ‘영광’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 모든 일련의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이 한국은 안중에도 없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은 북한의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이것이 결코 새로운 일은 아니라고 여기고 있다. 이에 반해 트럼프의 변덕스러운 대북 정책과 남을 얕잡아보는 태도는 새로운 것으로 한국 일반 국민의 주의를 사로잡고 있다고 그가 강조했다. 김씨는 “트럼프가 한국을 적으로 만들 아무런 이유가 없다”면서 “급격하게 껄끄러워지고 있는 한·미 관계를 치유하려면 트럼프가 모욕적인 행동을 즉각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가 핵무기를 가진 북한 못지 않게 한국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하루빨리 깨달아야 한·미 관계의 복원이 이뤄질 것이라고 그가 강조했다.
워싱턴= 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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