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19대 대통령선거에서 첫 투표권을 얻은 19세 유권자는 66만2000여명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따른 조기 대선으로 1998년 출생자 중 5월10일 이전에 태어난 이들만 생애 첫 선거권을 행사하게 됐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상 초유의 정국을 온몸으로 겪어내고 마침내 소중한 첫 경험을 한 이들의 심정은 어떨까. 또 대한민국의 장래를 이끌어갈 이들이 문재인 대통령 당선자에게 바라는 희망사항은 무엇일까.
새내기 유권자들을 만나러 9일 서울 양천구 신정2동에 위치한 4투표소를 찾았다.
이곳에서 생애 첫 선거권을 행사한 이모(19)씨는 “대학 첫 중간고사 시험을 마친 기분 같다”고 표현했다. 이어 “지방선거도 아니고 대선에서 첫 투표를 하게 돼 그런지 책임감이 느껴진다”며 “그동안 투표하러 가는 부모님을 보면서 소외감 같은 걸 느꼈는데, 감회가 새롭다”며 웃어보였다.
이씨는 “직접 내 손으로 뽑은 정부인만큼 젊은 친구들을 위해 일해줬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생애 첫 투표이니 꼭 참여하려 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재수학원에서 공부한다는 정지환(19)씨는 이날 투표한 뒤 등원했다.
정씨는 “공휴일에도 재수학원은 정상등원이지만, 투표를 하는 친구들에 한해서는 오늘 지각을 봐준다고 해 참여했다”고 밝혔다. 그가 다니는 학원에선 이날 오전 7시30분에 시작하는 '0교시' 수업을 하지 않고, 2시간가량 등원 시간을 늦추기도 했다.
정씨는 “공부도 공부지만, 공부를 해 대학에 들어가 펼쳐질 세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투표는 내 미래를 결정하는 일”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날 생애 첫 투표를 마친 윤미혜(19)씨는 “얼마 전 집으로 후보들과 관련된 정보와 투표 장소 등을 안내하는 책자가 발송됐는데, 내 이름이 적힌 것을 보고 진짜 시민으로 인정받은 기분이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투표권이 없었을 때는 대선에서나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나 누가 나왔는지 별로 궁금하지 않았는데, 이번 대선엔 토론도 보고 친구들과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고 전했다.
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오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김모(19)씨는 이날 오전 일찍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투표소를 찾았다.
김씨는 “대학 동기들 중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나 사전투표를 한 친구들이 카카오톡에 인증사진을 올렸는데, 나도 얼른 투표를 하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했다”고 말했다. 이어 “주변 친구 대부분 투표를 해 젊은층 투표율이 지난 대선보다 올라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최근 여론조사 전문기관 월드리서치에 의뢰해 유권자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9~29세 유권자 중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답한 이들이 87.2%로 나타났다. 이는 50대(85.5%)와 60대(80.8%)보다 높은 수치다.
9일 서울 양천구 신정2동의 4투표소에서 젊은 여성이 대통령선거를 위한 투표용지를 받고 있다. 김지현 기자 |
이들 새내기 유권자는 이처럼 첫 경험의 짜릿함과 뿌듯함, 책임감을 언급하고, 더불어 '미래와 꿈이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어달라고 새 정부에 요구했다.
먼저 이씨는 문 당선자에게 바라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묻자 "미래"라고 답했다.
그는 “지금 청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미래"라며 "앞이 안 보이는 긴 터널을 지나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6살 많은 누나가 2년째 취업을 준비 중인데 대학을 졸업하고도 날마다 방과 도서관을 전전하는 모습을 볼 때면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그의 누나는 취업 준비를 한다고 집에서조차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아르바이트생 김씨 역시 “청년들이 꿈을 꿀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그는 “'N포세대'와 '호모 인턴스' 등 청년 실업난에 따른 좌절을 담은 신조어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데, 이러한 단어들보다 긍정적인 의미를 담은 신조어들이 앞으로는 늘어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카페에서 주중과 주말, 밤낮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수많은 대학생과 취업준비생을 지켜보면서 동병상련의 심정이 된다고 호소했다.
그는 “지난번에는 자리를 치우다가 무심코 한 취준생의 노트북을 봤는데, 바탕화면에 저장해 놓은 자기소개서만 10개가 넘었다”며 “카페에 앉아서 한숨을 쉬면서 자소서를 쓰고 면접 스터디 등을 하는 이들을 보면 몇 년 후 내 모습일 것 같아 두렵다”고 울상을 지었다.
실제로 통계청이 지난달 21일 발표한 올해 1분기) 청년층(15~29세)의 체감실업률은 23.6%까지 치솟았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0.5%포인트 오른 수치다. 체감실업률은 최근 4주간 구직활동을 하는 등 즉시 취업할 수 있는 청년만 대상으로 집계하는 공식 실업률 통계와 달리 아르바이트 학생과 취업준비생 등 잠재경제활동인구까지 넓혀 계산한 지표다.
다시 한번 대입에 도전하고 있는 정씨는 “학벌과 직업의 귀천이 없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정씨는 재수학원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 주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이 길을 선택한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맞춰 답답한 재수학원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과도한 경쟁에 지쳐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씨는 “강사들이 매일같이 ‘서울대에 가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 ‘연세대에 가고 싶지 않으냐’라고 되묻는데, 그런 대학에 가면 마치 유토피아가 펼쳐질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라고 혀를 내둘렀다.
윤씨는 “‘이심전심’을 보여주는 대통령이 돼 달라”고 강조했다.
국민의 마음을 외면하고, 국민이 바라는 것조차 제대로 읽으려 들지 않았던 지난 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아다라는 게 그의 소망이다.
윤씨는 “그동안 젊은이들이 진짜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일자리를 원하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난 정부의 청년 정책은 결과적으로 실패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겉핥기식, 보여주기식 정책들만 내놓을 것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적재적소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피력했다.
김지현 기자 becreative0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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