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환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이에 따라 정부는 암, 심장질환, 뇌혈관질환에 희귀난치성 질환을 추가해 이들 질환을 '4대 중증질환'으로 지정했다. 또한 4대 중증질환에 대해서 '본인일부부담금 산정특례제도(이하 산정특례제 또는 4대 중증질환 보장성 정책)'를 적용해 왔다.
산정특례제는 4대 중증질환으로 발생한 급여의료의 대부분을 국민건강보험으로 보장해주는 정책이다. 특히 제18대 대선에서 당선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정강에 4대 중증질환 무상의료를 제시하기도 했다. 당선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무상의료까지는 아니더라도 4대 중증질환으로 인한 국민의 의료비 경감을 위한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를 국정과제로 선정했다.
문제는 비급여의료다. 산정특례제는 4대 중증질환으로 발생하는 급여의료비를 보장하는 정책이기 때문에 의료기관이 비급여의료비를 높게 책정하면 4대 중증질환의 보장성 강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부담이 오히려 증가할 수 있는 구조다. 이에 박근혜 정부는 4대 중증질환에 한정해 비급여의료에 대해서도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해 왔다. 박근혜 정부가 보건복지 중 가장 심도 있게 추진했던 정책 중 하나가 바로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였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산정특례제의 가장 큰 문제는 질병·소득 간 형평성이다. 수많은 질병 중 왜 4대 중증질환만 정부가 세금(보험료)으로 더 큰 혜택을 주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더욱이 소득이 높고 재산이 많아도 4대 중증질환에 걸렸다면 혜택을 준다. 하지만 고액의 의료 비용과 빈곤을 초래하는 질병이 과연 4대 질병뿐이겠는가? 다른 질병은 왜 적용이 안 되며, 생계가 더 어려운 환자는 왜 안 되는지에 대한 근거가 없다.
물론 그동안 정부는 4대 중증질환 외에도 고액의 의료비가 소요되는 질병들을 희귀난치성 질환에 포함하는 방법으로 산정특례제의 대상을 확대해 왔다. 하지만 산정특례제에 포함된 질병의 수는 빙산의 일각이다. 산정특례제의 혜택은 암이 가장 좋다. 최근에는 의료 기술의 발달로 쉽게 치료되거나 생명에는 큰 지장이 없는 암이 있다. 의료비 부담이 높지 않은 암도 있다. 반대로 4대 중증질환은 아니지만 장기간 치료로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되고 더 치료하기 어려운 질병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이왕 중증질환에 걸릴 거면 암에 걸려야 한다"는 환자들의 지적은 비아냥이 아닌, 불편한 진실이다.
답은 산정특례제의 폐지다. 다른 질병이라는 이유만으로 환자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심지어 부자 암환자는 혜택을 주고 가난한 다른 중증질환자는 제외하는 것은 역차별이다. 물론 특정 질병을 기준으로 환자를 분류해 보장성을 차별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다행히 우리나라에는 '본인부담상한제'라는 좋은 제도가 있다. 소득 1분위는 급여의료의 본인부담 비용을 최대 121만원(연간)만 지불하면 된다. 2~3분위는 152만원, 4~5분위는 203만원, 6~7분위는 254만원, 8분위는 305만원, 9분위는 407만원, 10분위는 509만원까지만 지불하면 된다. 즉, 본인부담상한제는 질병의 종류와 관계없이 의료비가 높을수록 그리고 소득이 낮을수록 더 큰 혜택이 제공된다.
본인부담상한제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소득별 보장 정도를 차등하는 본인부담상한제도 비급여는 제외된다. 장기적으로는 일본처럼 모든 의료행위와 의료비의 적절성에 대해서는 정부가 심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우선은 소득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특정 질병을 중심으로만 의료비 부담을 완화하고 있는 산정특례제도를 폐지하고 소득수준별로 의료비 보장 정도를 차등하는 본인부담상한제로 통합할 필요가 있다.
<세계파이낸스>세계파이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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