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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발걸음을 재촉하는 시민들 사이에서 백발의 할머니가 떡을 팔고 있다. 시민 대부분은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불법인 것을 알면서도 역으로 나오는 이유는 단 하나 생계를 위해서다. 불법이며 오가는 사람들에게 피해 준다는 사실은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이분들은 혼잡한 출근 시간을 피해 점심시간쯤 돼서 무거운 짐을 들고 역을 찾아와 사람들 발길이 뜸한 저녁 8~9시쯤 자리를 접는다.
또 단속을 의식해서인지는 몰라도 일부는 매일 고정된 자리를 찾지만, 일부는 그때그때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서울의 한 역에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면봉과 고무장갑을 팔던 한 할머니에게 단돈 1000원 하는 면봉을 구매하며 몇몇 질문을 던지자 할머니는 성급히 물건을 챙기며 손자뻘 되는 기자에게 “잘못했다” “미안하다” “금방 치우겠다”라고 말해 되레 죄송스럽기까지 했다.
또 한 노점 할머니는 기자를 단속원으로 생각했는지 “노인이 먹고살기 어려워서 그래요”라고 말해 사정을 자세히 듣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내놓은 물건의 가격은 대략 1000~2000원 내외로 20~30개 정도의 물건을 모두 2000원에 팔면 약 6만 원을 벌게 된다. 하지만 정오쯤 본 물건은 저녁 늦게까지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이는 어느 하루의 얘기는 아니다.
한 할아버지가 파는 고무장갑을 집어 든 한 중년 여성은 “아버지 같은 분이 고생하는 듯해서 물건을 샀다”며 “여기가 아니면 어디서 장사하겠냐”고 되물었다. 또 올해 대학 졸업반이라는 한 남학생은 쑥스러웠는지 “어머니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며 고무장갑을 구매해 가방에 넣었다.
반면 한 시민은 “누가 봐도 도색한 목걸이를 18k라고 속여 파는 건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물건 파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보는 시민들 일부는 불편함을 호소한다. 자칫 부딪히거나 물건을 발로 찰 수 있어서다. 다른 일부는 마음의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50대 직장인 남성은 “서민들은 노인이 돼서도 편히 쉬지 못하고 일해야 먹고 살 수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며 “늙어서 박스 줍지 않으면 인생 성공한 것”이라고 씁쓸한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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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역사 내에서 나물 파는 중년여성. 자리에 앉아 나물을 다듬고 있다. 비교적 젊은 층도 눈에 띄지만 머리 희끗희끗한 노인이 대부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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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버리는 곳에서 재활용품을 골라내는 할머니. 고물상에 내다 팔면 10원에서 100원을 받는다. |
단속하는 직원들도 불편한 마음은 마찬가지다. 민원이 들어오면 처리해야 하고, 이때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거리로 내몰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기초생계비는 일종의 ‘꼼짝마 지원금’이다. 지금 수준으로는 현재 사는 곳에서 최소한으로 입고 먹고 자는 것 이외의 활동은 사실상 어렵다.
나라마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 생활 수준에 대한 눈높이는 다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굶지 않고 길바닥에서 잠들지 않을 정도에 맞춰져 있었다.
그래서 일부 노인들은 거리로 나와 불법인 것을 알면서도 좌판을 펼치는 게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한편 근로소득이 생기면 그만큼 기초생계비가 깎인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 정한 최소한의 생활을 벗어나기 쉽지 않으며 이러한 이유로 기초연금을 받지 못한 노인은 1월 기준 42만 1000명으로 전체 수급자 465만 4819명의 약 9%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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