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BIFF)는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로 일본의 거장 고(故) 스즈키 세이준 감독을 선정했다. 혁신과 도전의 이름으로 아시아 장르 영화의 전설이 된 스즈키 세이준의 공로와 영화적 유산을 기리자는 뜻이다.
1923년 도쿄에서 출생한 스즈키 세이준은 1956년 ‘승리는 나의 것’으로 데뷔한 후 1967년까지 40편 이상의 작품을 연출하며 장르 영화의 관습을 파괴하는 독특한 영화적 양식을 선보였다. 특히 그의 야쿠자 스릴러와 팝아트적 영화 스타일은 왕가위, 쿠엔틴 타란티노, 오우삼 등 유명 감독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박찬욱, 봉준호 등 한국의 간판급 감독들 역시 그의 팬임을 자처하기도 했다. 2005년 제10회 BIFF를 찾았던 그는 노령의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재치 넘치는 입담과 날카로운 비평으로 그의 팬들에게 잊지 못할 순간을 선사했다. 지난 2월 13일 향년 93세로 별세했다.
올해 BIFF는 수상자 선정과 더불어 그의 작품세계를 만날 수 있는 특별전 ‘스즈키 세이준: 경계를 넘나든 방랑자’도 함께 마련했다.
대담한 성 묘사로 논란이 되었던 ‘육체의 문’(1964)과 니카쓰 영화사와의 스캔들까지 불거졌던 그의 대표작 ‘살인의 낙인’(1967) 등 1960년대 대표작에서 후기작 ‘찌고이네르바이젠’(1980), ‘피스톨 오페라’(2001) 등 7편을 상영하고 있다.
일본의 영화평론가 야마네 사다오와 영국의 토니 레인즈 등이 그의 작품을 설명하는 특별대담도 열린다.
◆육체의 문(1964)=전후 도쿄의 변두리. 성폭행의 상처를 입은 마야는 성매매여성으로 전락한다. 총상을 입은 패전군인 이부키와 사랑에 빠지고, 둘은 함께 도주를 꿈꾼다. 다무라 다이지로의 동명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는 개봉 당시 과감한 성 묘사로 논란이 되었다. ‘육체 3부작’의 첫 번째 작품.
◆동경 방랑자(1966)=와해된 야쿠자 조직의 일원인 테츠는 여전히 두목에게 충성을 다한다. 하지만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야 하는 갈림길에 선 그는 라이벌 조직에 대항하는 싸움에 휘말리게 된다. ‘살인의 낙인’과 함께 1960년대 스즈키 세이준 영화를 대표하는 걸작.
◆살인의 낙인(1967)=쌀밥 냄새에 성욕을 느끼는 야쿠자 세계의 삼인자 하나다는 새 암살 임무를 부여받는다. 하지만 미모의 여인 미사코를 만나면서 그의 일은 꼬여만 간다. 스즈키 세이준의 이름을 장르 영화의 혁신가로 자리매김하게 한 대표작.
◆찌고이네르바이젠(1980)=‘다이쇼 로망스’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으로 우치다 하켄의 소설이 원작이다. 독일어 교수인 아오치의 여정을 따라가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문다. 내러티브보다는 스타일 자체에 집중하는 스즈키 세이준 특유의 미학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아지랑이좌(1981)=1920년대 다이쇼시대의 일본. 극작가인 마쓰사키는 우연히 신비로운 미녀 시나코를 만난다. 시나코와의 만남이 몇 차례 반복될수록 꿈과 현실 사이의 구분이 점점 모호해진다. 이즈미 교카의 동명소설이 원작. ‘다이쇼 로망스’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이다.
◆유메지(1991)=다이쇼시대의 유명 화가 다케히사 유메지를 다룬 ‘다이쇼 로망스’ 3부작 중 마지막 작품. 고삐 풀린 삶을 이어온 화가의 욕망과 불안이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펼쳐진다. 1991년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에서 처음 상영됐다.
◆피스톨 오페라(2001)=암살자 조직의 삼인자인 ‘들고양이’ 미유키는 조직으로부터 암살 지령을 받지만, 암살 대상이 조직의 일인자와 이인자로 밝혀지면서 곤경에 처한다. 시각적 표현의 과잉, 영화 문법의 파괴 등 스즈키 세이준 스타일의 정수를 보여준다. ‘살인의 낙인’을 직접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부산=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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