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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엔젤스와 궁전예술단 교류
오솔길이 고속도로 되는 것
증오의 반미·반북 구호론 불가능
지속적이고 통찰력 있는 길 찾아야
‘죽의 장막’ 중국을 열어 세계를 평화롭게 한 것은 2g의 탁구공이었다. 빠른 핵폭격기도 거대한 항공모함도 아니었다. 한반도도 마찬가지라 믿는다. 남북 화해의 길을 여는 것은 결국 탁구공처럼 작고 귀엽고 친밀한 그 어떤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게 뭘까. 긍정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프로젝트가 20년 전 시도된 적이 있다.

리틀엔젤스와 만경대학생소년궁전예술단의 남북한 공연은 창의적이고 통찰력 있는 작업이었다. 리틀엔젤스는 천상의 목소리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세계인의 가슴을 녹인 ‘작은 천사들’이다. 남북 사이에 단절된 길을 열기 위해 천사 같은 소녀들이 먼저 북으로 갔다. 1998년 5월이었다. 단원들은 한국 전통무용 등 세계를 무대로 갈고닦은 실력을 북한사람들 앞에서 유감없이 발휘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발랄하고 구김살 없는 몸짓은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백영철 대기자 겸 논설위원
만경대학생소년궁전예술단은 2년 뒤 5월 서울에 왔다. 리틀엔젤스의 평양공연에 대한 답방형식이었다. 10대 소년소녀 78명으로 구성된 궁전예술단은 잘 훈련된 프로팀이었다. 악기 연주 수준이 높았고 가창력이 뛰어났다. 억지 미소가 부자연스럽긴 해도 끊임없는 훈련의 결과인지 음악과 잘 어우러졌다. 그중 이모군의 독창은 출중했다. 지금도 유튜브에서 확인이 된다.

남북 아이들의 교류가 한반도 평화에 큰 도움이 될까. 이에 대해 통일재단 고위관계자의 전언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서울로 내려온 북한 아이들 호텔방과 버스의 커튼은 내려져 있었다. 하지만 티 없이 맑은 아이들에겐 거짓말과 통제가 잘 통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신기한 듯 틈만 나면 흘금흘금 휘황찬란한 바깥풍경을 내다봤다. 쇼핑센터에서 예쁜 인형과 장난감을 갖고 싶어 했고 맛있는 과자를 선물하자 더없이 좋아했다.”

이 관계자는 “어른들이 선물 보따리를 압수하고 입을 막아도 아이들은 눈으로 본 것을 그대로 친구들 귀에 소곤소곤 말했을 것”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멀리 내다보는 눈이 있어야 길이 보인다. 작은 교류가 큰 대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리틀엔젤스와 궁전예술단의 교류는 깊고 어두운 산속에 하나의 오솔길을 연 것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이 오솔길을 자꾸 걷다 보면 큰길이 나고 그 길은 고속도로가 된다. 한반도의 평화운동은 조그마하면서 감동적인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북핵 위기가 고조되면서 남북한의 길이 꽉 막혔다. 대북경제 봉쇄는 중국 동참으로 압박의 힘이 아주 강해졌다. 미국의 무력은 세계 최강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평화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필요한 것은 평화를 향한 강한 의지다. 바람에 나부끼는 작은 불씨라도 살리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국빈 방한 기간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조롱하거나 위협하지 않았다. 국회 연설에서 ‘폭군’, ‘독재자’ 등의 표현은 썼지만 ‘로켓맨’ 같은 종전의 말폭탄은 삼갔다. 이런 실낱같은 싹을 놓치지 않고 키우는 것은 우리 역량에 달렸다.

트럼프 대통령 방한 기간 동안 반미시위대는 평화를 외치면서 폭력도 불사했다. 물통과 쓰레기를 던져 트럼프 대통령 일행이 탄 차량을 역주행하게 만들었다. 성조기를 불태우고 트럼프 대통령 얼굴 모형에 빨간 스프레이를 뿌려 모욕했다. 아무리 미국을 향한 적대감이 커도 평화를 입에 담으면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평화를 외치려면 마음속 증오심을 먼저 걷어내야 한다.

정치판에서도 그렇지만 평화운동은 오른쪽 두뇌가 더 필요하다. 논리보다 감성, 분열보다는 통합의 기능이 활발한 우뇌적 행동을 많이 해야 창의적인 평화의 길 찾기가 가능하다. 그 점에서 1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2017 한반도 평화통일 세계대회’는 주목의 대상이다. 통찰력 있는 진정한 평화운동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나라 안팎에 보여줄 것이다.

오랜 시간 골방에 숨어 지낸 사람일수록 따뜻한 손길이 더 그립다. 리틀엔젤스와 궁전예술단 교류와 같은 오솔길을 다시 한 번 내야 할 것이다.

백영철 대기자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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