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표현의 역사는 좀 더 고대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제국 귀족들은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정신을 불문율로 삼았다. 로마제국의 귀족은 자신들이 노예와 다른 점은 단순히 신분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의무를 실천한다는 점에서 노예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최근 이른바 ‘갑질’논란이 심심치 않게 매스컴을 장식한다. 갑질이란 두말할 나위 없이 계약관계에 뿌리를 두고 있는 말이다. 계약서에서는 으레 ‘갑을관계’가 성립되는데 갑은 계약을 주도하는 쪽을, 을은 갑과 계약하는 쪽을 말한다. 그러니까 갑은 을보다 우위의 위치에 있어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실천해야 하는 쪽이다. 갑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좋지 않은 행위를 하는 ‘갑질’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위반하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지난여름 한 제약회사의 회장이 전직 운전기사에게 폭언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찰은 내사에 착수했고, 회장을 피의자로 입건한 적이 있다. 회장은 직진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우회전 전용차로로 진입하라고 지시하는 등 상습적으로 불법운전을 지시하고 운전기사에게 폭언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국내의 한 치킨업체 회장도 가맹점을 상대로 폭언과 욕설을 퍼부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렇게 의혹이 불거지자 부회장이 직접 해당 점포를 방문해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단순 사과가 아니라 대형 로펌 변호사를 통해 가맹점주에게 투자를 제안하며 회유한 정황도 드러났다.
그런가 하면 한 대기업 회장의 아들이 대형 로펌 변호사들을 폭행한 사건이 일어나면서 ‘갑질’논란이 다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경찰은 갑질을 한 사람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렸지만 석연치 않은 점이 남아 있다.
김욱동 서강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모두 갑질을 일삼는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일수록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좀 더 관심과 배려를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다. 재산, 권력,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은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명예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다시 한번 곰곰이 되새겨 볼 때다.
김욱동 서강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