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입장벽 낮고 '흙수저'도 평등하게 참여 이유
거래소 폐지 방침에도 "해외로 가면 되는데"
"전근대적인 발상…자금만 음성화될 게 뻔해"
"시장 혼란 가중…오히려 저가 매수의 기회로"
300만원이 안 되는 중소기업 월급으로 생활하면서 주식이나 펀드 등 재테크의 '재'자도 몰랐던 최씨다. 하지만 가상화폐 열풍은 이제까지의 여느 투자 열풍과는 차원이 다르게 다가왔다.
법무부 장관이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를 언급했다는 소식에 최씨는 "어린 친구들이 투자를 많이 해서 그런지 기사 하나에 가격이 요동친다. 바닥을 치면 더 사야겠다"며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정부의 초강수 규제 대책을 외려 '저가 매수' 기회로 삼는 모양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지난 11일 가상화폐를 투기·도박과 동일 선상에 놓고 "거래소를 통한 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고 거래소 폐쇄까지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확정된 바 없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강도 높은 규제 발언에 여론은 들끓었다. 해당 기사 댓글 창에는 '고위 관료들은 억대 부동산을 갖고 있으면서 국민이 돈 좀 버는 것을 못 보냐', '미국과 일본은 바보라서 가상화폐 규제를 안 하느냐'는 등 억하심정을 토로하는 글이 넘쳐났다.
특히 부동산 시장 등 기존의 투자처보다 진입 문턱이 낮은 가상화폐를 마지막 '대박' 기회로 삼은 20·30대 반응이 냉소적이다.
이들은 가상화폐 시장이 일확천금을 기대하는 투기판이라고 대체로 인정한다. 정부의 통제가 작용하지 않아 국제 시세보다 한국에서 훨씬 높은 가격에 가상화폐가 거래되는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까지 등장한 상황이다. 뉴시스가 접촉한 20·30대 투자자들 모두 거래 실명제와 과세 등 일정 정도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꼴로 가상화폐 규제 발언을 내놓으면서 거래소 폐지까지 언급한 정부 태도는 시장의 혼란만 부추기고 시대 흐름에도 역행한다고 반발했다.
국내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빗썸이 지난해 11월6~13일 투자자 4164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상에서 가상화폐 인식조사를 진행한 결과 20대와 30대의 비중이 각각 29.0%로 나타났다. 투자자 중 2030 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의 60%에 달하는 것이다.
비트코인 투자자인 회사원 조모(32)씨는 "보이스피싱, 대포통장이 사회 문제가 되자 온갖 서류를 떼오라 하면서 통장 개설 시 소비자들 불편만 커졌던 것과 유사한 상황"이라며 "불법이 있으면 처벌하면 되지 거래소 자체를 막겠다니 참 전근대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취업 준비생인 윤모(29)씨는 "거래소를 폐지해도 할 사람은 해외 거래소로 빠져나가고 자금만 음성화될 게 뻔하다"며 "차라리 규제 윤곽이 구체적으로 나오면 시장 흔들림이 멈출 텐데 정부가 간만 보고 있다. 정부를 향한 불만만 커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씨는 지난해 11월 '비트코인'에 300만원을 투자해 두달 새 6000만원을 벌었다.
대기업에 재직 중인 이모(30)씨는 "김치 프리미엄은 너무 비정상적이고 악용 사례가 많기 때문에 규제는 꼭 필요하다"며 "적당한 규제는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씨는 지난해 5월 1000만원을 가상화폐에 투자했고 수익률이 최고 400%를 찍기도 했다.
이씨는 "가상화폐에 대한 관심이 한국형 가상화폐나 블록체인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정부가 좀 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가상화폐를 서서히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키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학업과 취업에서 온갖 경쟁 스트레스와 부조리, 좌절을 경험하며 지내온 젊은층에게 가상화폐 시장은 이른바 '흙수저'도 평등하게 참여해 큰 자본 없이도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투자처로 인식돼 있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2030세대는 인터넷 공간을 통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가상화폐 시장이 평등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여기에 갑자기 규제를 가한다 하니 엄청난 반발이 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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