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부터 혼선은 없었다
여권에서는 애초부터 가상화폐 대책에 혼선이 없었다는 주장이 나온다.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 방침이 거론된 것은 사실 지난 11일 기자간담회가 처음이 아니었다. 정부는 지난달 초부터 관계부처 차관회의와 비공식 회의 등을 수시로 개최하며 가상화폐 투기 근절 방안을 고심했다. 지난달 28일 차관회의에서는 거래소 폐쇄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안을 포함해 모든 가능한 수단을 열어 놓고 대응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부의 이 같은 강경 방침은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청와대도 이를 몰랐을리 없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거래소 폐쇄’ 발언이 기존의 정부 대응방향과 다를 게 없었다는 의미다. 정부 관계자는 “법무부가 밝힌 방침은 기존 논의단계에서 꾸준히 나왔던 대책이 맞다”며 “다만 법무부가 시장을 우선하는 부처가 아닌 만큼 대책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세련되지 못한 부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지난 11일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법조기자단 간담회에서 가상화폐, 수사권 조정 등 현안과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실제로 정부는 가상화폐 거래 자체를 최대한 억제하는 정책에 주력하고 있다. 아직 공식 화폐로 인정되지도 않고 세금을 물리지도 않는 가상화폐에 대해 거래실명제를 도입하고,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결국 거래소와 은행을 옥죄는 형태로 활동반경을 최대한 위축시키는 게 정부의 정책방향이라는 메시지를 꾸준히 보냈던 셈이다. 일단 가상화폐소 거래량을 줄여 가격을 안정시키되, 이 방법이 먹히지 않으면 결국 폐쇄 조치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가상화폐 즉시 폐쇄조치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지만, 현재의 가상화폐 광풍에 인위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가상화폐 거래량이 비정상적으로 폭증하고, 해외 시장에 비해 훨씬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는 ‘김치 프리미엄’ 현상 등에 대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정책위 관계자는 “가상화폐를 그대로 두면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에 털고 가야 된다는 것은 알고 있다”며 “빠른 시일 내에 구체적인 대책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시행일정까지 제시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2의 ‘바다이야기’ 되나
문재인정부와 여당이 이토록 ‘가상화폐 버블’에 경계심을 드러내는 이유는 따로 있다. 노무현정부 때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했던 사행성 도박게임인 ‘바다이야기’의 트라우마 탓이다. 바다이야기는 물고기 등의 특정 모양이 연속으로 등장하게 되면, 코인이나 상품권을 받는 일종의 파칭코 게임이다. 해당 상품권은 인근의 타인 명의 환전소에서 현금화하는 식으로 단속을 피해 나갔고, 업주가 인위적으로 당첨 확률을 조작할 수도 있었다. 2004년 처음 등장한 바다이야기는 2006년 전국적인 유행을 타게 됐고, 여기에 돈을 탕진한 사람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이를 비관해 자살하는 사람까지 속출했다. 정부가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이미 바다이야기 피해자가 100만명에 달한 상황이었다.
여권은 현재의 가상화폐 열풍과 당시의 바다이야기 사태가 상당 부분 유사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둘 다 경기침체의 여파로 ‘대박’의 꿈을 노린 중산층과 서민이 열광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바다이야기는 당시 환전 수법 등에서 현행법의 사각지대를 교묘하게 악용하면서 몸집을 불렸다. 이에 따라 정부는 게임물등급위원회를 신설하고 관련법을 상당 부분 정비할 수밖에 없었다. 가상화폐도 공식 지위를 인정받지 않은 단계라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의 제재 범위에서 벗어나 있다.
청와대는 이번 정부의 대책 논의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가상화폐의 위험성에 대한 시각을 꾸준히 공유하며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인식을 공유해왔다는 후문이다.
정부와 민주당은 조만간 당정협의를 열어 가상화폐 종합대책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여권에서는 한 두 차례의 논의로 입장을 정리하기 어려운 내용인 만큼 충분한 사전 협의과정을 거치기로 했다. 일단 정부는 각 부처 간 조율을 통해 가능한 대책과 수준 등을 여러 시나리오별로 정리하고, 여당은 전문가와 관계자 등을 동원한 정책위 차원의 검토를 통해 정책의 수준과 시점 등을 압축한 뒤 당정협의에서 최종 조율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박세준 기자 3j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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