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구분법으로 볼 때 지금 대한민국엔 두 개의 투기현상이 진행중이다. 가상화폐 투기와 아파트 투기가 그 것이다. 투기는 내재가치에 비해 시장가격을 과도하게 부풀려 거품을 만든다. 그렇게 거품을 만드는데 일조하거나 거품인줄 알면서도 투자를 한다면 투기다.
아파트 투기는 정부 정책의 산물이다. 역대 정부가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부동산 중심의 단기부양책의 유혹에 빠지기는 했지만 박근혜 정부는 그중 ‘최악’이었다. 금리를 끌어내리고 대출규제 빗장을 풀어버렸다. 빚을 내 집을 살 수 있는 역대 최고의 환경을 만들었다. 혈세를 동원해 집을 여러 채 사는 투기세력도 도와줬다. 투기를 부추긴 정도가 아니라 정부가 앞장서 투기를 이끈 것이다.
“후손들의 소득을 빼앗아오는 짓”(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내 임기 동안에만 문제가 없으면 된다는 식의 무책임”(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이라는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친박 실세 최경환 의원이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임명된 2014년 7월 이후의 일이다. 문재인 정부의 잇단 규제로 아파트 급등세는 주춤하는 모양새이지만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시장의 투기관성은 유지되고 있다. ‘강남불패’의 종교화한 신념이 아직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가상화폐 투기를 정부 정책의 산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파트 투기가 가상화폐 투기를 조장한 측면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치솟는 집값이 젊은 세대를 좌절케 한지 오래다. 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이유의 중심에 치솟는 주거비가 있다. 그렇게 취업도 어렵고, 결혼도 어려운 절망의 시대에 가상화폐가 탈출구로 나타난 것이다. 젊은 세대가 “가즈아”를 외치며 가상화폐 투기로 질주한 배경이다. 아파트 투기의 영향으로 가상화폐 투기가 달아오른 것이다.
안동현 자본시장연구원장은 “강남 아파트는 부유층의 투기로 자본력이 뒷받침된 투기라면 가상화폐는 자본이 취약한 젊은층과 서민층의 투기”라고 설명했다. “부동산 투기가 앞선자들의 탐욕적 투기라면 가상화폐 투기는 뒤처진 자들의 슬픈 투기”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파트 투기와 가상화폐 투기의 폐해는 어느 것이 더 클까. 투기 효과의 범위를 놓고 본다면 아파트 투기가 훨씬 크다. 가상화폐는 투자자 문제로 국한되지만 아파트 투기는 그렇지 않다. 시장 바깥의 사람들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젊은 세대가 치솟는 집값에 좌절하는 것이 단적 증거다. ‘없는 사람들’ 중심의 가상화폐 투기 광풍은 ‘좀 있는 사람들’ 중심의 아파트 투기의 결과다.
류순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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