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친근하게 불러보려 해도 어색한 단어가 ‘아버지’다. 요즘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아이스하키 서광석(41) 감독은 3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부쩍 난다. 그는 선수 시절 현대 오일뱅커스의 윙 포워드 출신으로 2001년 창단 첫 한국리그 우승을 이끈 주역이다. 국가대표에 발탁되면서 한창 주가를 올리던 2000년대 중반, 원체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쓰러졌다. 내색은 하지 않아도 늘 아들을 자랑스러워했던 아버지였다. 그러나 뇌수술을 두 차례나 받는 등 10년여의 긴 투병생활이 이어지면서 어느덧 중년이 된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
서광석 감독이 11일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체코와의 패럴림픽 아이스하키 예선 2차전에서 선수들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
서 감독은 은퇴 후 서울 경복고에서 코치를 역임하며 2014년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지도자상까지 받았다. 그러나 휠체어 없이 거동이 불가능했던 장애인으로 살다 간 아버지를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했다. 충남 아산시 장애인복지관이 운영하는 ‘아산스마트라이노 장애인아이스하키팀’에 봉사활동 개념으로 선수들을 지도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다. 지난해에는 아예 패럴림픽 대표팀 감독을 맡아 데뷔전인 2017 강릉 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을 수확하며 장애인 체육에 발을 제대로 담갔다. 한국 장애인아이스하키가 누구보다 선수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최적임자를 만나 날개를 다는 순간이다.
조별예선 2승(1연장승·승점 5)을 달리는 한국은 12일 미국(2승·승점 6)이 강원도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조별예선 2차전에서 체코(2패)를 10-0으로 완파하면서 체코와 일본(2패)을 제치고 최소 조 2위를 확보해 패럴림픽 사상 첫 4강행을 확정했다. 이 같은 쾌거는 지휘봉을 잡은지 단 1년 만에 대표팀의 조직력을 확실히 다져 놓은 서 감독의 공이 크다.
|
서광석 감독이 11일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체코와의 패럴림픽 아이스하키 예선 2차전에서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
|
서광석 감독(왼쪽)이 11일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체코와의 패럴림픽 아이스하키 예선 2차전을 승리로 장식한 뒤 골리 유만균을 격려하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
이날 서 감독은 본지 인터뷰에서 “선수들에게 비장애인도 하기 힘든 훈련을 독하게 시켰다. 하루에 실전 연습 2회는 기본이고 지구력을 기르기 위해 스케이팅 훈련도 빼놓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선수들은 스케이트 대신 퍽이 통과할 수 있는 양날이 달린 썰매를 탄다. 두 개의 스틱을 사용해 빙판을 이동하는데, 정규 시간 45분 동안 끊임없이 노를 젓다보면 이만한 ‘중노동’도 없다. 서 감독은 “선수들이 처음에는 많이 힘들어했다. 하지만, 훈련량이 쌓이다보니 스케이팅에 확실히 힘이 붙더라. 이제껏 잘 따라와준 선수들에게 한없이 고마운 마음뿐이다”고 밝혔다.
이제 서 감독의 목표는 우승이다. 대표팀은 13일 오전 12시 세계랭킹 2위 미국과 예선 마지막 경기인 3차전을 치른다. 미국과는 8전 전패로 절대 열세이지만 A조 1위가 유력한 캐나다를 4강전에서 피하기 위해 반드시 잡아야 할 상대다. 서 감독은 “아버지의 영전에 우승컵을 바친다면 더 뜻 깊을 것 같다. 처음부터 진다는 생각은 안한다. 일단은 수비적인 플레이로 가겠지만 빈틈을 노린다면 반드시 찬스가 올 것이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강릉=안병수 기자 rap@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