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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미투 운동’은 계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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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3-12 21:01:02 수정 : 2018-03-12 2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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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라.’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의혹을 폭로한 김모씨는 안 전 지사에게 받은 이 같은 메시지도 함께 공개했다. 안 전 지사가 이런 말을 보낸 전후 사정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이 문장을 보고 얼마 전 들었던 한 지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김민순 정치부 기자
공기업 직원인 A씨는 최근 회사에서 사내 성폭력 방지 차원에서 관련 사례를 수집한다는 공지를 접하고 상사에게 당했던 성추행을 익명 고발했다. 문제는 그 뒤에 벌어졌다. 이름 등 신상은 물론 사건 장소와 날짜도 없이 두루뭉술하게 적힌 대자보 내용을 본 가해자가 A씨에게 다짜고짜 ‘내 얘기 맞느냐’며 따져 물은 것이다. A씨는 “질문 자체가 2차 가해나 다름없으니 더 이상 묻지 말아달라”고 했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결국 수많은 사례 중 하나가 자신의 일이었음을 알게 된 가해자는 “이미 다 지난 일인데 왜 이제서야 끄집어내느냐”고 말했다고 했다.

그러나 A씨는 잊을 수 없었다. A씨에게 그 사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회사에서 그를 마주칠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가빠졌다. 그가 그날 억지로 자신을 눕히고, 머리를 매만졌던 손길, 그 순간 차창 밖으로 보였던 간판에 적힌 상호까지 생각난다고 했다.

나 또한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피아노학원에 가던 중 ‘도와달라’며 한 할아버지가 날 불렀다. 그 할아버지는 내 손을 덥석 잡고 골목에 주차된 차 뒤로 끌고 가 그의 성기를 만지게 했다. 그 피부에 닿기 싫어 끝까지 버티던 내게 ‘괜찮아. 무섭지 않아’라고 달래던 목소리, 소리를 지르면 죽일 수도 있다는 듯 내 몸을 꽉 잡고 있던 손의 악력, 낯선 노인에게 잡혀 무서워하던 어린 나를 보고도 못 본 척한 아저씨까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상기할 수 있다.

잊고 싶었다. 당시 같은 학원을 다니던 친구가 ‘너 혹시 그 아저씨 본 적 있느냐’고 물었지만 난 “없다”고 말했다. 내가 따라가지만 않았어도, 그날 좀더 일찍 집을 나섰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후에도 그랬다. 지하철에서 한 남성이 허벅지를 만졌을 때도, 수습기자 시절 ‘증거물 분석을 도와달라’던 경찰이 모르는 남녀의 성관계 영상을 틀어주며 ‘히히’ 웃었을 때도 내가 만만해 보여서, 내가 처신을 못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잊지 않으면 안 됐다. 어차피 세상은 바뀌지 않으니까. ‘성폭력을 당했다’고 말한들 사람들은 ‘왜 짧은 치마를 입었니’, ‘왜 그렇게 웃었니’라고 답할 게 뻔했다. ‘명확한 증거를 대라’며 무고죄와 명예훼손을 운운하기도 한다. 피해자 스스로 ‘100% 순수한 결백’을 입증해야 하는 분위기에서 침묵이 최선임을 알게 됐다. 무기력을 학습했다. 직장 동료에게 성폭행을 당해도 합의를 했다는 이유로 ‘꽃뱀’이 된 친구와 만원버스에서 엉덩이를 움켜쥔 남자에게 소리를 쳤다 면박을 당한 친구를 ‘반면교사’ 삼아야 했다.

그런 생각을 최근 ‘#미투’운동이 깨뜨리고 있다. 그러니까 미투는 적어도 젠더 이슈에 한해 ‘부분적 치매’를 앓은 우리 사회를 향한 외침이다. 그간 외면하고 무시했던, 그래서 소외됐던 피해자의 기억을 지금 마주하고 있다. 고통스럽지만 피해선 안 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건 무고죄나 명예훼손이 아니라 진실을 대면할 용기다. 미투가 전하는 목소리가 우리 모두의 기억이 될 때까지 미투는 계속돼야 한다.

김민순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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