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 직원 1000여명이 모인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박삼구(73)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갑질과 비리 의혹이 잇따라 폭로되고 있다. ‘침묵하지 말자’는 이름의 이 채팅방은 지난 3일 개설 후 한도 인원인 1000명을 채웠다. 이어 개설된 두 번째 채팅방도 만들어진 지 1시간여 만에 1000명이 참여했다. 직원들은 채팅방에서 기내식 대란 원인과 사측의 미숙한 대응 등을 고발하고 있다.
특히 박 회장이 금호타이어 지분 확보를 위해 하청업체에 1600억원 상당의 투자를 요구한 것이 이번 대란의 원인임을 지적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단기간 기내식 공급계약을 맺은 하청업체 대표 A(57)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발생했다.
A씨의 유족과 지인은 경찰 조사에서 “A씨가 계속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며 일하는 상황에서 어려움을 토로했다”며 “아시아나 기내식 공급이 지연되는 문제를 다룬 언론보도를 보고 힘들어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오후 박 회장은 광화문 사옥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기내식 대란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그는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사태로 인해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예측과 준비를 하지 못해 고객과 직원들이 고생하고 있는 데 대해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고 고개를 숙였다. 박 회장은 또 기내식을 납품하는 재하청 협력업체 대표가 숨진 채 발견된 것과 관련해 “유족께 깊이 사과한다”고 말했다.
고개 숙인 박삼구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4일 오후 서울 광화문사옥에서 최근 논란이 된 ‘기내식 대란’과 관련해 고개를 숙여 사과의 뜻을 밝히고 있다. 남정탁 기자 |
이날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한 금호아시아나그룹 직원들은 ‘박삼구 회장 갑질 및 비리 폭로’를 위해 6일 오후 6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첫 집회를 열기 위해 종로경찰서에 집회 신고를 했다. 집회 명칭은 ‘아시아나항공 NO MEAL(노 밀) 사태 책임 경영진 규탄 촛불문화제’이며 신고 예상 인원은 500명이다.
탈세 및 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28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 남부지방검찰청으로 출석하고 있다. |
애초 항공업계 갑질 논란은 대한항공에서 촉발됐다. 2014년 조현아(44)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에 이어 최근 조현민(35)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사태, 이명희(69) 전 일우재단 이사장의 폭언·폭행 논란 등이 대표적이다.
대한항공 관련 갑질 폭로는 ‘현재진행형’이다. 4일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와 직원연대 등은 조양호(69) 한진그룹 회장과 아들 조원태(43) 대한항공 사장이 대한항공 상표권을 계열사에 부당하게 이전해 사익을 챙겼다며 부자를 검찰에 고발했다. 조 회장이 2013년 회사를 분할하는 과정에서 상표권을 한진칼에 귀속시킨 뒤에도 대한항공이 매년 상표권을 지급하게 했다는 것이 고발인들 주장이다.
대한항공직원연대 박창진 공동대표가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대한항공직원연대 활동 관련 사용자 보복인사 폭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허정호 선임기자 |
조 회장은 해외금융계좌 잔고를 과세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돼 5일 법원 영장실질심사를 받는다.
양대 항공사의 잇따른 갑질 논란에 여론의 시선은 싸늘하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국적 항공사의 불미스러운 경영에 국토교통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제대로 관리감독을 하고 있습니까’ ‘대한항공·아시아나 안전에 관한 청원’ 등 청원이 잇따르고 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촛불시위를 계기로 재벌의 갑질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고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며 “이제는 기업이나 사회에 과거의 수직적 관계가 아닌 수평적 질서가 요구되고 있다”고 말했다.
권구성·김선영 기자, 인천=이돈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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