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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있어도, 없어도… 한국인은 왜 '집값 급등'에 분노하는가

입력 : 2018-09-06 06:00:00 수정 : 2018-09-06 07: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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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왜] ‘집값 급등’에 분노하는 한국인 분석
“상대적 박탈감, 안 느껴본 사람은 정말 모릅니다. 정말 짜증나고 우울합니다.”

서울 집값이 49개월째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자 정부 여당이 집값을 잡겠다며 연일 부동산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많은 이들이 집값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집값이 상승해도 실질적인 이득이 없는 1주택 실수요자들은 세금 걱정이 앞서고, 내 집 마련의 꿈도 꿀 수 없는 무주택 세대들은 절망감을 호소한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 집은 주거의 개념을 넘어서 재산의 기본 척도가 됐기 때문에 사람들은 집값 상승에 상대적 박탈감과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다.

◆절망감과 불안감에 빠진 무주택 세대

집 없는 젊은 세대가 최근 서울 집값 상승에 느끼는 박탈감과 상실감은 더욱 크다는 분석이다.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지출은 계속 늘어나는데 소득은 제자리걸음이라 내 집 마련은 꿈도 못 꾸기 때문이다.

서울 중구의 한 오피스텔에 전세로 거주하는 회사원 김모(34)씨는 5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재계약 할 때 필요한 몇 천만원 모으기도 빠듯한데, 1~2년 만에 몇억씩 오르는 집값을 보면 힘이 쭉 빠진다. 집을 사겠다는 꿈을 가져본 적도 없는 것 같다”며 “회사 때문에 서울을 떠날 수도 없다. 정말 절망적”이라고 분노했다.

집값 파동은 가정의 불화로도 이어지고 있었다. 40대 주부 정모씨는 “작년부터 남편하고 계속 싸우면서 이혼 위기까지 왔다. 대출 안 받고 살 수 있었던 아파트가 있었지만 조금만 기다려보자는 남편 때문에 기회를 놓치고, 지금은 쳐다볼 수도 없는 가격이 됐다”며 “전셋집 재계약 날짜가 다가올수록 불안감에 미칠 지경이다. 전학 가기 싫다는 아들을 보면 마음이 더 아프다”고 말했다.

한 누리꾼은 “딱 1년 전 친구는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고 나는 정권이 하는 말을 믿고 전세를 연장했다”며 “지금 난 어디로 이사 가야 하나를 걱정하고, 친구는 1년 만에 2억이 올랐다며 대출 다 갚았다고 웃는다. 내 선택을 저주한다”고 자조 섞인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1주택자도 운다…“집값 올랐다고 세금 또 올린다고?”

정부가 집값을 잡기 위해 다주택뿐 아니라 1주택 보유자에 대한 세금 규제 강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자 1주택자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직접 살기 위한 목적으로 대출을 받아 힘들게 주택을 구입한 사람들도 집값의 갑작스러운 상승에 불안감을 호소하는 것이다.

2년 전 대출을 내서 처음 아파트를 샀다는 30대 회사원 박모씨는 “나는 집이 있지만 집값이 더 안 올랐으면 좋겠다. 나는 금수저도 아니고 집이 여러 채 있는 사람도 아니다”며 “가진 거라곤 이 집 한 채뿐인데, 집값이 자꾸 올라 세금도 오르면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 누리꾼은 “나도 서울 살고 최근에 집값이 조금 올랐지만, 정리해서 지방에 갈 것도 아니라 반갑지도 않다”며 “우리 집 가격이 오르면 뭐하나. 서울에 안 오른 곳이 없어서 이사도 못 가는데”라고 불만을 털어놨다.

또 다른 누리꾼도 “집 한 채 있는 사람은 집값이 5억이 오르든 10억이 오르든 좋을 게 없다. 어차피 주거 목적이라 그냥 이 집에서 살아야 한다. 대출 이자 갚을 걱정뿐”이라고 한탄했다.

◆청년·청소년들도 집값 상승에 희망 상실

주택 소유에 대한 고민은 먼 미래의 일일 것 같은 1020청년들도 요동치는 서울 집값에 고민이 늘어간다고 한다.

서울 시내 4년제 대학교에 재학 중인 이모(24)씨는 “집값이 계속 오르면 다음 계약 때 월세가 더 오를 것 같아 너무 걱정”이라며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해 학교 인근 원룸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데 한달에 60만원 되는 월세를 감당하기 너무 힘들다. 남은 학기는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을지, 휴학하고 돈을 벌어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전셋집에서 살고 있다는 고등학생 김모(17)양은 “아버지께서 술 마시고 집에 오시면 서울에 집 한 채 못 사둬서 미안하다는 말씀을 종종 하신다”며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오신 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하실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공부를 해서 대학을 간다고 해도 나중에 서울에 집 한 채라도 살 수 있을지, 무슨 꿈을 안고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들 “집은 재산의 척도, 안전의 보루…상대적 박탈감 당연해”

전문가들은 이처럼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가 서울의 집값 상승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절망하는 이유에 대해 한국에서 집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봤을 때 당연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김영란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이날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우리나라에서 집은 단순히 주거의 개념을 넘어서 하나의 재산의 가치로 인정된다”며 “재산의 기본 척도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사람들이 재산이 있다 없다는 평가할 때 집이 그 기준이 된다”며 “집이 있냐 없냐, 위치는 어디냐, 몇 평이냐 이런 걸로 재산이 있다 없다를 평가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지금은 집이 재산의 척도이기 때문에 (집이 없는 사람들은 있는 사람들에게, 집이 한 채가 있는 사람들은 여러 채가 있는 사람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도 “한국인들에게 집이 가지는 의미는 안전의 보루, 자기가 이 사회에서 버틸 수 있는 보호장치라고 할 수 있다”며 “집 없는 설움이 가장 크다는 말도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월세, 전세 옮겨 다니고 고생하면서 내 집 마련이 예전부터 (사람들의) 꿈이었다”며 “자기 집을 갖게 되면 돈이 막 늘어난다는 게 아니라 안정감을 갖게 되는 건데, (집값이 오르면) 이 사회에서 최소한의 나를 지킬 수 있는 공간 하나 확보할 수 없다는 좌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지연 기자 delay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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