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없이 아무것도 못 해"…시민들 발만 동동 #1.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혼자 사는 이모(31) 씨는 끼니를 해결하려고 집을 나섰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한참을 망설였다. 지갑에 현금은 없고, 카드뿐인데 문을 두드려본 식당마다 카드결제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궁여지책으로 찾아간 편의점에서도 결제가 안 돼 아르바이트생이 손님들에게 계좌번호를 불러주고 있었다.
#2. 평소 짧은 거리는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타고 이동하는 현모(30) 씨는 서울 서대문구에서 자전거를 예약하려다 KT가 먹통인 것을 깨닫고 목덜미를 잡았다. 결국 근처 커피숍으로 들어가 와이파이를 잡고, 자전거를 예약한 뒤 정류소까지 전력 질주했다. 예약 후 2분 안에 잠금장치를 해제하지 않으면 예약이 취소되기 때문이다.
분신처럼 매일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은 전화·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기능을 넘어선 지 오래다. 카드결제는 물론 금융거래, 내비게이션, 음악재생 등을 담당해온 스마트폰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니 시민들은 발만 동동 굴렀다.
법학전문대학 진학을 준비 중인 김모(24) 씨는 면접을 마치고 아버지를 만나려고 했으나 서로 연락이 안 돼 한참을 헤맸다. 김 씨는 "도시한복판에서 조난한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며 "사람이 무력해진다는 게 뭔지 느꼈고, 통신이 잘못되면 정말 큰일이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떠올렸다.
자영업을 하는 고석훈(31)씨는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스마트폰이 먹통이 돼 깜짝 놀랐다"며 "뉴스도 못 보니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겠고,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과도 만날 수 없고, 불편한 수준을 넘어서 공황상태에 빠질 정도였다"고 말했다.
마포구 공덕역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허모(45) 씨는 "카드결제가 안 되는데, 근처 현금인출기도 고장 났다보니 손님들이 그냥 발을 돌리더라"며 "어제 낮에는 장사를 거의 못 했고 지금도 손님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KT 기지국 화재로 현금만 받습니다'라는 안내 글귀를 적어놓은 마포구의 한 숯불 갈빗집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 일하는 이모(70) 씨는 "카드 결제도 못 하고, 전화로 예약도 못 받으니 답답하고 속이 터진다"며 울상을 지었다.
트위터 아이디 'kitty****'는 "서대문구, 마포구 일대에 이동통신이 안 되면 나만 불편한 일인 줄 알았는데 주말 장사해서 버텨야 하는 자영업자들에게는 이번 사고가 재난 수준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촌각에 생사가 오가는 병원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병원 전산망이 멈춰 선 것이다.
병원에서 근무한다는 한 의료진은 트위터에 글을 올려 "의료진들이 KT 휴대전화를 쓰는데 전화 자체가 안되니 응급상황에서 서로 콜을 못 해서 원내 방송만 계속 띄워야 했다"며 "이러다가 사람 하나 죽겠구나 싶었다"고 토로했다.
도시재난연구소 우승엽 소장은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작은 못' 하나가 '톱니' 전체를 망가뜨릴 수 있다"며 "이번 화재로 우리 사회가 작은 충격에 어이없게 붕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우 소장은 "모든 게 연결된 '초연결사회'에서는 한 분야에서 발생한 사고가 다른 분야로 전파돼 마치 도미노가 무너지듯 막대한 피해를 낳는다"며 "사고가 없는 시스템은 만들 수 없으니 '플랜B'를 미리 마련해놔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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