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모크’(감독 웨인 왕)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 작가 폴 오스터가 1990년 뉴욕타임스에 발표한 단편소설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영화에서 작가 오스터의 분신이기도 한 주인공 폴은 오기의 담뱃가게에서 담배를 사면서 그와 자주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뉴욕타임스로부터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청탁받은 폴은 오기가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는다. 오기의 가게에 흑인소년이 책을 훔치러 왔다가 도망가면서 지갑을 흘리게 되고, 오기는 어느 크리스마스에 문득 소년의 지갑을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지갑 속의 주소로 빈민가를 찾아간 오기는 소년 대신 그의 눈먼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소년의 할머니가 손자가 찾아온 것으로 여기자, 오기는 할머니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아예 손자인 척하며 할머니와 껴안기도 하며 그녀와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는 이야기다. 오기는 지갑을 그 집에 두고 나오다 소년의 장물로 보이는 카메라를 하나 들고 나온다. 이후 오기는 그 카메라로 가게 앞 브루클린 거리를 매일 아침 일정한 시간에 찍는다.
폴은 오기의 얘기를 들으며 그가 10여년간 똑같은 장소를 찍은 사진을 모은 앨범을 무심하게 넘긴다. 같은 거리를 매일 지나는 사람의 모습, 그들의 일상을 찍은 사진은 그게 그것인 것처럼 별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오기가 천천히 넘기라고 말하는 통에 천천히 넘기던 그는 갑자기 울컥하면서 눈물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사망한 그의 아내가 출근하며 오기의 가게 앞을 지나는 모습이 찍힌 것이다. 사랑했던 아내의 일상을 담고 있는 그 사진은 이제 사진의 의미를 넘어서 잃어버린 가족을 그의 앞에 데려다 놓은 것이다. 크리스마스의 참 의미를 ‘스모크’는 우리 일상을 통해 발견하게 해준다.
춥고 쓸쓸한 연말이지만 이웃사랑 가족사랑은 우리를 따스하게 녹여준다. 한 해가 또 덧없이 지나간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올 한 해 주변 사람에게 얼마나 사랑을 전해 줬는가 생각해 볼 때다.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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