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깊어 가면 하천과 호수에 얼음이 얼기 시작한다. 두꺼운 얼음이 내려앉은 물속 세상은 더욱 을씨년스럽다. 민물에 사는 물고기들은 대부분 모래 속이나 바위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간다. 따뜻한 봄을 기다리며 겨울잠을 청한다. 겨울철에 민물고기를 쉽게 볼 수 없는 이유이다. 하지만 추운 겨울을 오히려 기다리는 물고기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얼음에 구멍을 뚫고 잡아내는 얼음 물고기, 빙어(氷魚)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바다빙어목 바다빙어과에 속하는 빙어는 길이 15㎝ 정도까지 자란다. 가늘고 긴 날렵한 몸매에 갈라진 꼬리지느러미, 작은 기름지느러미가 앙증맞다. 등쪽은 황갈색이나 회갈색, 배쪽은 은색 또는 은백색이며, 몸의 중앙에는 금속성 광택이 있는 띠가 달린다. 살아 있을 때 속살이 훤히 비쳐 속이 빈 물고기, 공어(空魚)라고도 한다. 향긋한 오이향이 나서 옛날 문헌에는 과어(瓜魚)라 기록되기도 했다.
빙어는 원래 하구에 가까운 바다에서 살다가 이른 봄 하천으로 올라와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하는 회유성 어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 북부의 동해로 흐르는 하천과 이에 가까운 바다에 자연 분포한다. 오늘날처럼 빙어가 전국적으로 분포하게 된 것은 1925년 당시 부산 수산시험장이 함경남도 용흥강에서 채집한 빙어의 알을 화천 파로호, 제천 의림지 등 전국 주요 저수지에서 부화시켜 방류한 것에서 비롯된다. 요즘에는 지역 겨울축제 때문에 빙어의 분포 범위가 더욱 넓어지고 있다. 부영양화, 수질오염, 염분 변화 등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비교적 뛰어난 점도 한몫한다.
차가운 물을 좋아하는 빙어는 여름철에 상대적으로 수온이 낮은 호수나 저수지의 깊은 곳에서 지내다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 오면 수온이 낮은 모래바닥을 찾아 얕은 곳으로 이동을 시작한다. 덕분에 우리는 겨울철이 돼야만 빙어를 만날 수 있다. 호수나 저수지를 바다로 알고 민물에 갇혀 사는 빙어. 올겨울 빙어를 만나게 되면 목숨을 건 숭고한 본능에 바다를 대신하여 위로라도 전하는 건 어떨까.
김병직·국립생물자원관 유용자원활용과 환경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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