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영국이 유럽연합(EU)을 떠나는 브렉시트를 연기해달라고 EU에 공식 요청했다. 의회가 ‘노딜 브렉시트’(합의 없는 EU 탈퇴)를 거부한 상태에서 합의안에 대한 제3 승인투표를 열기도 힘들어짐에 따라 EU에 시간을 더 달라고 하는 셈이다. 이에 맞서 EU는 합의문 비준 가능성을 높여야만 승인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브렉시트를 둘러싼 영국과 EU 간 기싸움이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20일(현지시간) 하원 ‘총리 질의응답’에 참석한 자리에서 오는 29일로 예정된 브렉시트의 연기를 요청하는 서한을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에게 발송했다고 밝혔다. 메이 총리는 리스본 조약 50조에 따른 EU 탈퇴 시점을 6월30일까지 3개월간 연기하는 방안을 서한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브렉시트를 6월 말 이후로 연기하고 싶지 않으며, 장기 연기를 위해 5월로 예정된 유럽의회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브렉시트 합의안 통과를 위한 제3 승인투표를 열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영국 하원은 지난 14일 EU 탈퇴시점을 연기하는 정부 결의안을 가결했다. 정부안은 20일을 데드라인으로 제3 승인투표를 실시해 브렉시트 합의안이 의회를 통과하면 EU 탈퇴 시점을 6월30일까지, 만약 통과하지 못하면 이보다 오래 연기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전날인 19일까지도 안건 상정 등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동일 회기 내 실질적으로 같은 내용의 안건을 재상정할 수 없다’는 하원의장의 성명이 나오자 빠르면 다음 주 정도로 제3 승인투표를 연기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브렉시트 연기를 우선 요청한 것이다.
그러나 EU는 영국 정부의 브렉시트 연기 요청에 대해 합의문 비준 가능성을 높일 수 있어야 이를 승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2년간 브렉시트 협상을 이끌어 온 EU의 미셸 바르니에 수석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브렉시트 연기의 목적과 결과는 무엇인가”라고 반문한 뒤 “연기 시한이 끝날 때쯤 오늘과 같은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나”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영국 정부의 결정력 부족으로 초래한 브렉시트 불확실성을 끝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EU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의 장클로드 융커 위원장은 20일 브렉시트 연기 여부 결정에 대해 “EU 정상들이 이번주 EU 정상회의에서 브렉시트 연기를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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