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처리를 거듭 촉구하며 “국회 파행이 장기화하면서 정부의 시정연설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있다”고 야당을 비판했다. “국회가 일하지 않는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라며 날 선 비판을 했던 지난 13일 수보회의보다 발언 강도가 다소 약해졌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추경 심사조차 않고 있는 국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은 여전했다. 지난달 25일 추경안이 국회에 제출된 이후 문 대통령의 추경 처리 촉구 발언은 이번이 여섯 번째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정부의 추경안이 국회에 제출된 지 한 달이 다가오도록 심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 매우 안타깝다”며 “특히 세계적인 경제여건의 악화에 대응하는 차원에서도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정부의 노력에 국회가 힘을 더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거듭 호소했다.
문 대통령은 국회에 계류된 추경안의 성격과 관련해 “이번 추경은 미세먼지와 강원도 산불, 포항지진 등 재해대책 예산과 경기 대응 예산,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며 “어느 것 하나 시급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재해대책 예산의 시급성은 정치권에서도 누구도 부정하지 않고 있고, 경기 대응 예산도 1분기의 마이너스 성장으로부터의 회복을 위해 절박한 필요성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해 복구와 경기 대응을 위해서라도 추경의 신속한 처리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추경의 규모에 대해서도 우리 경제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모두 아는 바와 같이 국제통화기금(IMF)은 우리에게 재정 여력이 있음을 이유로 9조원의 추경을 권고한 바 있지만, 정부의 추경안(6조7000억원)은 그보다 훨씬 적다”며 “국민들 사이에 경제에 대한 걱정이 많은 만큼 국회도 함께 걱정하는 마음으로 추경이 실기하지 않고 제때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조속한 추경안의 심의와 처리를 요청한다”고 호소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호소는 올해 재정수지가 마이너스에 들어서면서 일각에서 재정건전성에 대한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민생 추경’의 시급함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앞서 이날 오전 덴마크의 프레데릭 크리스티안 왕세자와 메리 왕세자비를 접견했다. 문 대통령은 “양국 수교 60주년과 ‘상호 문화의 해’를 기념하기 위해 경제·문화사절단을 이끌고 방한해 주신 것에 감사드린다”고 환영했다. 프레데릭 왕세자는 “우리 내외는 DMZ(비무장지대)를 직접 방문해 한반도 정세에 대해 배울 기회를 가질 것”이라고 문재인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지지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청와대의 인식을 비판했다. 황교안 대표는 이날 전북 김제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국가채무 비율을 40%대 초반에서 관리하겠다고 말한 경제부총리에게 40%대의 근거가 무엇이냐며 재정 확대를 요구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2015년 야당 대표 시절엔 국가채무 40%에 대해 나라 곳간이 바닥났다고 주장했다”고 꼬집었다. 나경원 원내대표도 “올해 1분기 국세 수입이 전년 대비 8000억원이나 줄었다”며 “내년도 예산안을 500조원 이상 편성하면 본격적인 ‘마이너스 통장’ 나라살림”이라고 거들었다.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도 이날 예방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대통령이 경제가 잘되고 있다고 말했는데, 반대로 정부는 경제가 어려우니 추경을 편성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역설적 충돌”이라고 꼬집었다.
김달중 기자 da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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