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제재 강화 이후 전 세계적인 ‘탈(脫) 화웨이’ 움직임이 가시화함에 따라 국내 IT(정보기술) 기업들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이미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로 인한 전방위적인 ‘쓴맛’을 톡톡히 봤던 터라 당장 직접적인 타격보다는 장기적인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화웨이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등 국내 주요 기업을 잇달아 만나 차질 없는 부품공급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글로벌 IT 기업들이 연이어 화웨이와의 ‘절연’을 선언함에 따라 미국 제재의 부당함에 대한 호소도 이어졌다.
국내 주요 기업들은 현 사태에 대한 영향 분석 및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상황이다. 미국의 압박이 더욱 거세져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할 경우 관련 업종을 포함해 국내 산업 전반이 타격을 받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의 경우 화웨이와 직접 관계된 분야가 아니더라도 다른 분야에서 유탄을 맞을 수 있다”며 “사드 사태 당시 중국 현지에서의 어려움뿐 아니라 관광을 비롯한 내수까지 전방위적인 ‘공포’를 겪었던 만큼 더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화웨이 때리기 국면에서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5G(5세대 이동통신) 상용화 이후 칩부터 단말기, 통신장비 등을 모두 제공할 수 있는 토털솔루션 업체는 전 세계에서 삼성전자와 화웨이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지난해 글로벌 매출(243조7700억원) 중 중국 비중이 17.7%에 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종합적인 득실은 쉽게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SK하이닉스는 올해 1분기 매출(6조7700억원) 중 47%를 중국이 차지할 정도로 중국 비중이 절대적이다. 중국 현지의 생산라인까지 보유하고 있어 극도로 신중한 입장이다. 5G 이동통신망 구축 과정에서 화웨이 통신장비 의존도가 높은 LG유플러스는 난감한 입장이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아직 5G 및 유선 통신망 구축과 관련해 화웨이와 관련한 정책상 변화는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SK텔레콤과 KT도 화웨이 장비를 일부 쓰고 있다. 두 회사는 기간(백본)망과 관계가 없기 때문에 화웨이 제재 국면에 따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면서도 대중국 사업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화웨이가 당장 쓸 부품은 비축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당분간은 문제가 크지 않을 수 있지만, 표준 기술까지 전방위적인 차단을 당하고 있는 만큼 이번 사태가 장기화하는 것에 대한 업계 우려가 크다”고 전했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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