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변동 위기, 선택, 변화 -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재러드 다이아몬드/강주헌/김영사/2만4800원

재러드 메이슨 다이아몬드(83·사진) UCLA 지리학과 교수가 6년 만에 신작을 냈다. 저서 ‘총, 균, 쇠’와 ‘문명의 붕괴’ 등으로 한국에서도 이름을 알린 학자이다. 비교역사가 특기인 그는 해박한 지리적 지식을 바탕으로 나름의 논리를 전개한다. 그는 미국과 일본, 독일 등 선진국이라 불리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의 민주적 가치 상실의 실상을 솜씨 있게 풀어낸다. 이를테면 미국에 대해선 민주주의 위기라고 했고, 일본에 대해서는 끝없는 과거사 부정이라고 했다. 영토나 국력에서 차이가 크고, 역사적 배경이 다른 국가들을 평면 비교하는 등 논리적 비약도 눈에 띈다.
그는 “위기란 축적된 결과이지 한때 갑자기 도래하는 게 아니다”고 했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위기가 닥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개인과 국가의 경우 대부분의 위기는 오랜 기간 축적된 점진적 변화의 결과이다. 오랫동안 갈등을 겪은 부부는 이혼하기 마련이다. 위기는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압력이 갑자기 폭발할 때 닥친다.”

그러면서 세계 각국의 역사적 경험과 지정학적 제약을 풀이한다. “과거에 위기를 극복한 경험과 지정학적 제약은 떨쳐낼 수 없는 짐과 같다. 하루아침에 더 많은 경험을 쌓을 수도 없고, 지정학적 제약이 없어지기를 바랄 수도 없다. 그러나 독일의 비스마르크와 빌리 브란트는 이런 경험과 제약을 타개한 지도자였다.”
그는 “그러나 경험과 지정학적 제약이란 이 같은 ‘당연한’ 조건이 때때로 무시되고, 지금도 여전히 무시되고 있다. 역사의 교훈이 필요한 이유”라면서 “이를 통해 향후 행보를 예측할 수 있다”고 했다.
결국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북유럽 민주국가 핀란드 사례를 들었다. 핀란드는 과거의 실책을 기반으로 요령 있게 대처하고 있다는 것. 과거의 실책이란 러시아란 강대한 세력을 이해하지 못한 나머지 철저히 짓밟힌 역사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독재국가 러시아와 요령 있게 지내는 한편, 강력한 군대를 유지하며 국가의 안전을 우방에 의존하지 않도록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다는 것.
그는 특히 독일과 일본을 비교함으로써 미래 지향의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를 구분한다.
“2차 대전 후의 독일과 일본은 책임을 인정하는 태도에서 뚜렷이 대조되는 사례를 보여준다. 두 나라 정부는 전쟁을 시작했다는 책임이 있다. 2차 대전 중 독일과 일본은 다른 민족에게 끔찍한 짓을 저질렀고 그 국민들도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이런 과오에 대한 독일과 일본의 접근법은 완전히 달랐다. 독일은 전쟁으로 수백만 동포를 잃고 소련군에게 수많은 독일 여성들이 강간을 당했다. 전후에는 상당한 영토를 빼앗긴 까닭에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고 자기 연민(자기 위안)에 빠질 수도 있었다. 만일 연합군이 승리하지 않았다면, 독일의 도시들에 폭격을 퍼부어 수많은 독일 시민을 죽인 연합군의 작전은 전쟁범죄로 여겨야 마땅하다고 푸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독일은 나치의 범죄를 광범위하게 인정했다. 학교에서도 나치의 범죄와 독일의 전쟁책임을 가르쳤다. 이에따라 2차 대전 동안 독일에 핍박당한 폴란드 등 유럽 국가들과 보다 더 나은 관계를 수립해나갔다.
반면 일본은 전쟁을 시작한 책임을 지금까지도 줄기차게 부정하고 있다. 미국의 속임수에 넘어가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했고, 그 때문에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게 일본인의 전반적인 인식이다. 지금도 과거를 부정한다. 일본은 진주만 폭격 4년 전에 중국에 선전포고도 없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사실까지 무시했다. 일본은 한국과 중국 민간인에게 범한 범죄적 행위에 대한 책임을 여전히 부정한다. 오히려 일본은 원폭으로 큰 피해를 보았다는 자기연민에 허우적댈 뿐이다. 원자폭탄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더 참혹한 사태가 벌어졌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솔직히 논의조차하지 않는다.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고 오히려 피해의식과 자기연민을 강조하는 태도는 한국이나 중국과의 관계 회복에 악영향을 미치고, 이는 결국 일본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
그러나 다이아몬드 교수는 스스로 ‘신중한 낙관주의자’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일본에 대한 비관주의를 퍼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식이다. 일본에 대해 역사의 교훈을 겸허하게 본받을 것을 시사한다. 아울러 현대 민주국가에 만연한 지금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심각성을 먼저 인정해야 하며, 이를 통해 선택과 변화를 시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600여쪽의 만만찮은 분량임에도 소설처럼 읽을 수 있다. 최근 지식을 담은 현대사 산책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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