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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미의영화산책] 가족 이기주의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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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5-31 22:23:23 수정 : 2019-05-31 22: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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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회 칸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세계 최고 영화제로 꼽히는 칸에서 대상을 거머쥔 것은 처음으로, 이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한국 영화의 위상이 크게 높여졌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양극화의 심화가 지적되고 있다. 봉 감독은 초기작에서부터 이러한 구조적 모순과 개인적 양심의 타락에 대한 불감증에 천착해 왔는데 ‘기생충’은 이러한 주제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기생충’은 일상적 공간의 의미가 확장돼 마치 연극처럼 긴밀하게 상징적 구도를 지닌다.

가족 전원이 백수인 기택(송강호)은 반지하에 살고 있다. 사수생인 장남 기우(최우식)가 명문대생 친구 덕분으로 고액 과외를 하는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최고경영자(CEO)인 박사장(이선균)의 집은 건축가가 지은 멋진 이층집이다. 게다가 이층집 지하공간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으로 지하와 반지하, 이층집이라는 수직적 공간화가 계급을 구분하는 기준점이 되는 동시에 욕망 표출을 구조화한다. 갑을 간의 갈등이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지만, 을은 취업을 한 상태여서 그나마 나은 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백수는 을도 되지 못한, 을이라도 되고 싶은 병의 위치인 것이다.

‘기생충’은 갑을 관계를 갑·을·병의 관계로 보다 다층적으로 제시하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영화 속 인간관계로 인한 사건은 또 다른 인물과 관련되면서 예상을 뒤엎으며 진행됨으로써, 관객들이 끊임없이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영화를 보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이 영화에서 장남 기우는 대학재학증명서를 위조하면서도 자신이 내년에 들어갈 대학이니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입에 풀칠하기 위해 온 가족이 매달린 피자집 종이포장 박스를 접는 일도 4개에 하나씩은 불량이 생겨도 괜찮다고 생각하는가 하면, 박 사장네 집에 기택 가족이 한 사람씩 들어앉으면서도 돈이 없으므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영화에서처럼 한국인의 양심과 도덕불감증은 가족이기주의에서 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으로는 양심 없는 사람을 지탄하면서도, 우리 가족만 잘된다면 양심이나 도덕쯤은 눈 질끈 감고 슬그머니 부도덕한 행동을 자행하는 사람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과연 우리의 양심은 안녕한 걸까?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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