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는 최근의 한일 갈등과 관련해 22일 "한국과 일본은 떼놓을 수 없는 관계로 '나쁜 놈들' 이런 식으로만 생각하면 안 된다"며 최근 흐름에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일본 조치를 선거용, 문재인 정권 교체 의도 등으로 함부로 추정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며 우리가 먼저 감정에 휘둘린다면 상대와 전략싸움에서 결코 이길 수 없다고 지적했다.
라 교수는 김대중 정부시절 안기부 1차장과 주영대사,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과 주일대사를 지낸 바 있다.
◆ 이슈부터 다뤄야지 상대 동기 함부로 추정하면 일 안 풀려
라 교수는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전날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의 자민당과 우호정당이 81석을 획득, 개헌에 필요한 85석 확보에 실패한 일에 대해 "대부분 예상했던 일이다. (아베의 한국수출규제 등의 조치가) 선거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일부에서 '아베 조치가 선거용이다'고 분석한 것에 라 교수는 "대인관계도 국가관계에서도 나쁜 건 상대방 동기를 함부로 추정하는 것"이라며 "남의 동기를 함부로 추정하면 좋은 인간관계, 국가관계도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일본이 무역 조치를 시작했을 때 '참의원 선거용' 그런 얘기가 나왔다. 두 번째는 우리 경제가 좋아지니까 '우리 경제발전을 못하게 억누르려고 한다' 그런 얘기가 또 나왔다. 세 번째로는 '문재인 정부를 실각시키려고 한다', 그 다음에 '전쟁하는 나라로 가고 싶어서 그러는 거다'"면서 "어떤 이슈가 있으면 먼저 이슈를 다뤄야 한다. 이게 올바른가, 바른가, 이걸 어떻게 대응하는가, 전략은 뭐냐, 이렇게 생각해야지 남의 동기부터 분석을 하려고 하면 부부관계도 잘 안 된다"고 했다.
◆ 외교는 잔혹한 현실...日은 피에 맺힌 원수, 이런 생각말고 아베 반대여론 40% 이용해야
라 교수는 "외교라는 건 엄중하고 잔혹한 현실에서 올바른 추론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상당히 신중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현실이란 건 늘 우리에게 친절하지 않고 국제관계 현실이란 건 참혹하다. 잔혹한 현실에서 어떻게 올바른 추론을 찾아냈나, 이게 외교인데 그렇게 안 하고 그냥 우리 감정에 너무 치우쳐서 대응을 한다면 좋은 결과가 되기가 힘들다"며 "이 문제를 풀려면 일본을 피에 맺힌 원수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자유민주주의적인 질서 안에서,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으로다뤄야 한다"고 조언했다.
구체적으로 "아베 강경조치 찬성이 60%, 반대가 40%다"면서 "(이들에 대한 홍보를 중심으로) 합리적으로 설득하고 합리적으로 그 이야기를 하고 해서 풀 수 있다(풀어야 한다)"고 했다.
◆ 日, 아베 반대 40%국민에게 비애국자란 말 안해...우린 '친일파'라며 감정에 휘둘려
라 교수는 "일본의 감정을 자극하기 전에 우리 자신의 감정을 먼저 너무 자극시켜놓으면 안 된다"며 "일본을 보면 아베조치에 반대한 40%보고 비국민이니 비애국자니 이런 소리 안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 있다고 비국민, 친일파다, 이런 식으로 나오고 우리 감정에 우리가 감정에 휘둘리면 어떤 그 전략에도 이길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원칙에 의거해서 합리적으로 설득하고 이야기를 해서 풀 수 있는데 일본은 애당초 나쁜 놈이다’, ’우릴 죽이려고 하고 정권을 바꾸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생각 해가지고는 해결이 되겠는가"고 냉정함이 중요하다고 했다.
◆ 한일은 불가분의 관계, 대일특사도 조용히
라 교수는 "우리하고 일본은 떨어지면 안 된다는 나라다. 안보문제도 그렇고 경제관계도 그렇고 두 나라가 지향하고 있는 가치나 이념이 같다"면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지향하는 가치는 국경을 넘어서 공유하는 것인데 우리가 가끔 잊어버린다"고 그 틀에서 한일관계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라 교수는 "지금은 (한일 모두 과열양상을 보이고 있기에) 공개적인 제안을 서로 주고받고 하지 말고 조금 이면에서 좀 무게 있는 정치인들이(움직일 필요가 있다)"며 "제발 말 함부로 안 하는, 신중한 타입의 정치인들이 휴가여행이라도 일본에 가서 (이면에서) 얘기를 하는 게 옳지 않겠는가"고 나름의 방법을 제시했다.
대일특사와 관련해선 "특사라는 건 양측 합의가 있어야 한다. 가장 좋은 특사는 양측에 아무 부담도 없는 (인물이고), (특사도) 공개가 안 돼야 하는데 여기서부터 떠들고 특사로 누가 간다 그러면 엄청난 부담을 지고 가게 된다"고 비판했다.
◆ 외교라인 문책은 반대, 강 건널 때 말 바꿔타지 않아
라 교수는 야당이 요구하고 있는 '외교안보라인 교체'에 대해선 반대했다 .
그는 "강을 건너가다가 말을 바꿔타지 말라고, 그런 속담이 있다. 지금은 아니다. 만일 외교팀 경질이 있다면 일이 다 해결된 다음에 몇 년 지난 다음에 그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라 교수는 "외교부라고 무슨 일을 안 했겠는가, 또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게 겉에 드러나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다"며 외교부를 두둔했다.
◆ 한일군사정보호협정(지소미아)는 자충수 될 소지
라 교수는 우리 정부가 일본 대응책으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는 설에 대해선 "지소미아는 일본뿐 아니라 우리 이해관계도 관련된다. 안보 문제에선 일본도 조금 물러서 있고 미국도 물러서 있고 우리가 취약하다"며 "안보에 중요한 관건을 협상 레버리지로 내놓고 싸우겠다고 하는 게 그렇게 현명한 일인가, 잘못하면 자충수가 된다"고 옳지 못하다고 했다.
또 "이런 카드를 쓴다면 공개적으로 얘기를 안 해야한다"면서 지소미아 건 도 우리정부가 허둥지둥하고 감정에 휘둘리는 듯한 모습의 하나라고 봤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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