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이치(愛知) 트리엔날레’의 ‘평화의 소녀상’ 전시 중단으로 논란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아이치현 지사가 정부의 전방위적인 전시 중단 압박은 ‘검열’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아이치 트리엔날레 실행위원장인 오무라 히데아키(大村秀章) 아이치현 지사는 5일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전시 중단 압력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가와무라 다카시(河村隆之) 나고야 시장과 보수정당 ‘일본 유신회’의 스기모토 가즈미(杉本和巳) 참의원 의원이 전시 중지를 요청한 것과 관련해 “공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전시물의) 내용이 ‘좋다, 나쁘다’ 얘기하는 것은 검열”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21조에 위반한다는 의심이 극히 농후하다”고 지적했다.
오무라 지사는 “공권력이야말로 표현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표현이 있어도 받아들이는 것이 헌법의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시 중지를 압박하는 정부가 보조금이 투입된 행사에서 평화의 소녀상이 전시된 것은 부적절하다는 논리를 펴는 데 대해서도 반박했다. 오무라 지사는 “세금을 사용하고 있으니 (해도 되는 것의) 범위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 최근의 논조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반대다(범위가 정해져 있지 않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관련 기획전의 전시비용은 420만엔(약 4823만원)으로, 전액 기부로 충당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 대해서는 혐한 세력 및 우익 세력의 위협을 넘어 정치권과 정부의 직접적인 압박까지 가해졌다.
지난 2일 가와무라 나고야 시장이 “일본 국민의 마음을 밟아 뭉갠다”고 비판하는 항의문을, 스기모토 의원은 “공적 시설에서 실시되는 행사로 극히 부적절하다”는 비판 서한을 아이치현에 제출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까지 나서 “보조금 교부와 관련해 적절히 대응하겠다”며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예산을 깎을 수 있다고 압박했다. 결국 다음 날 오무라 지사는 전시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1일 개막 후 불과 사흘 만이었다.
오무라 지사는 전시 중단 결정으로 우익과 정부 압박에 굴복했다는 일본 예술가들의 비판에도 직면했다. 오무라 지사는 전시 중단을 결정한 이유에 대해 “안전안심을 우선으로 생각했다”며 이날 아침에도 ‘석유를 뿌리겠다’는 협박 이메일이 아이치현에 도착했다고 전했다. 자신의 전시 중단 발표가 안전을 위한 것이지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전시 중단에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김진곤 문체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문화예술의 창작과 표현의 자유는 어떤 경우에도 존중돼야 하며 조속히 정상화되길 희망한다”며 “도쿄문화원장이 트리엔날레 조직위원회에 문체부 입장을 전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외교부는 일본을 방문하는 한국민들에게 ‘일본 내 혐한 집회·시위 장소 방문을 자제하고, 신변 안전에 유의하라’는 내용의 문자 발송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한편 일본 NHK는 2∼4일 전국 18세 이상 22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아베 내각의 지지율이 49%로 3주 전보다 4%포인트(p) 상승했다고 보도했다.
도쿄=김청중 특파원, 강구열 기자 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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