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월례조회 도중 불거진 ‘막말·여성비하 동영상 상영’ 논란으로 자사 제품 불매운동이 확산될 만큼 여론의 역풍이 거세진 데 대해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이 11일 책임을 지고 회사 경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한국콜마 측은 당초 문제의 동영상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자 “(동영상 내용처럼 편향된) 감정적 대응 대신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갖자는 취지였다”고 해명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나흘 만에 윤 회장이 사퇴 카드를 꺼내들 수밖에 없을 만큼 여론 악화를 무마하지 못했다.
◆부적절한 유튜브 영상 튼 게 화근
11일 한국콜마와 관련 언론보도 등에 따르면, 회사 측은 지난 7일 서울 내곡동 신사옥에서 윤 회장과 임직원 7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월례조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윤 회장은 최근 일본 수출규제에 대한 한국의 대응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극보수 성향의 유튜브 영상을 틀어 논란이 됐다. 문제의 동영상에 등장한 유튜버는 “아베는 문재인 면상을 주먹으로 치지 않은 것만 해도 너무나 대단한 지도자”라거나 “베네수엘라의 여자들은 단돈 7달러에 몸을 팔고 있고, 곧 우리나라도 그 꼴이 날 것”이라는 등 부적절한 표현을 써가며 문재인정부를 맹비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적잖은 직원이 당혹스러워하거나 불만을 표출했고 이런 사실이 언론보도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급기야 국내 주요 화장품업체의 위탁 제조사인 한국콜마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으로 번지자 한국콜마 측은 9일 입장문을 내고 “최근 월례조회 때 활용된 특정 유튜브 동영상으로 물의를 일으킨 점에 국민 여러분께 사과의 말씀 드린다”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회사 측은 입장문에서 “현재의 위기 대응을 위해 대외적 환경과 현상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최근 인터넷상에 유포되고 있는 특정 유튜브 영상의 일부분을 인용했다”며 “영상을 보여준 취지는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현혹돼선 안되고,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갖고 기술력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여성에 대한 부적절한 사례 언급은 전혀 없었다”고 해명하면서 “이번 사안을 계기로 윤 회장 이하 한국콜마 임직원은 조금 더 겸손한 마음으로 고객을 대하겠다”고 말했다.
◆첫 입장문, 여론 역풍 진화 역부족···화장품업체들에 불똥 튀기도
한국콜마의 해명에도 온라인과 SNS를 타고 일부 소비자의 한국콜마 보이콧 분위기는 확산됐다.
유명 회사의 유명 브랜드로 구성된 ‘한국콜마 불매리스트(콜마가 위탁제조)’가 돌았고, 1990년 일본콜마와의 합작으로 태어났던 기업 정보가 공유되기도 했다.
불매리스트에 오른 유명 화장품 업체들에도 불똥이 튀었다. 한국콜마는 거의 대다수 화장품 업체와 위탁제조 거래관계가 있을 정도로 한국의 대표 ODM 기업이다.
이들은 불매운동 관련 상황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저마다 대책 회의에 들어갔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계속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데 쉽게 가라앉지 않을 수 있다는 걱정이 든다”며 “각 기업이 대책 회의에 들어갔고, 최악의 경우 다른 위탁업체로 대체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소비자 인지도가 높은 품목은 핵폭탄 급 영향에 대한 우려가 더 크다.
국민 아이크림이라고 불리는 ‘AHC 얼티밋 리얼 포페이스 아이크림’이 대표적이다.
화장품 업계 또다른 관계자는 “원인 제공자는 따로 있는데 그 유탄을 전혀 책임 없는 업체가 맞는 게 가장 우려스럽다”며 “당장 위탁업체를 바꿀 계획은 없지만 문제가 커지거나 장기화할 경우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윤 회장, 부정적 여론과 거래업체들의 우려에 부담 느끼고 사퇴한 듯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화장품 업계의 불안과 우려가 고조되자 결국 윤 회장이 총대를 맨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날 서울 서초구 내곡동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저는 이번 사태에 대해 깊이 반성하며 제 개인의 부족함으로 일어난 일이기에 모든 책임을 지고 이시간 이후 회사 경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이어 “내부조회 시 참고자료로 활용한 동영상으로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며 “제 잘못된 행동으로 피해를 입게 된 고객사, 저희 제품을 신뢰하고 사랑해준 소비자 및 국민 여러분께 거듭 사죄드린다”고 사과했다.
또한 “특히 여성분께 진심을 다해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며 “그동안 불철주야 회사를 위해 일해온 임직원 여러분께도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번 일로 많은 심려와 상처를 드린 저의 과오는 무겁게 꾸짖어 주시되 현업에서 땀 흘리는 임직원과 회사에는 격려를 부탁드린다”며 “이번 제 잘못에 대해 주신 모든 말씀을 겸허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가슴 속 깊이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회견 시작과 말미에 고개를 숙이며 반성의 뜻을 표했다.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무역보복 이후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벌어진 가운데 국내 기업 최고경영자가 이와 관련한 처신이 문제가 돼 사퇴까지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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