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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예칼럼] 내 아이의 건강한 한 끼를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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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8-11 20:55:25 수정 : 2019-08-12 07:5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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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영양이 우선인 영양교사 / 급식이 맛없다는 학생·학부모 / 집에서 아이에게 먹이는 음식 / 급식보다 완벽한지 돌아볼 일

최근 20대의 젊은 영양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안타까운 기사를 읽게 됐다. 평소에 학생들의 급식 식단을 짤 때 무엇보다 영양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급식이 맛없다’며 학생과 학부모가 거세게 항의해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백명 학생의 입맛을 어떻게 다 맞출 수 있을까. 한 배에서 나온 자식의 입맛도 제각각인데. 엄마라도 자식의 편식을 못 고치는데. 물론 맛과 영양,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으면 정말 좋겠지만. 인스턴트 음식과 피자나 치킨 등 기름진 배달 음식에 익숙한 학생의 철없는 불평은 그렇다 쳐도 성장기 아이의 영양을 무엇보다 생각해야 할 학부모의 항의는 좀 너무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아이들이 모두 성인이 됐지만, 일하는 엄마로서 나는 일말의 미안함과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유학 후 한국에 정착해서 지방대학에 전임교수로 발령받아 주말에만 서울 집에 오게 됐다. 살림은 친정어머니가 가끔 도와주었지만, 아이들의 도시락이 가장 걱정이 됐다. 학창 시절 집을 떠나 자취를 했던 남편이 새벽마다 도시락을 쌌다. 거의 매일 반복되는 아빠표 계란프라이, 소시지볶음, 멸치볶음 3종 세트를 아이들은 불평했다. 아침은 늦잠으로 굶고 저녁은 배달 음식으로 때우는 일이 많은 성장기의 아이들 때문에 마음이 아파 하루 한 끼라도 내 손으로 해 먹이고 싶었다. 결국 나는 과감히 사표를 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권지예 소설가

그러다 급식을 하게 됐을 때, 나는 정말 나라에, 학교에 큰절이라도 하고 싶을 만큼 고마웠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학부모가 돌아가며 초등학교 급식 당번을 했던 적이 있었다. 교실에서 배식을 하다 보면 담임 선생님이 감시(?)를 해도 아이들의 편식이 심각했다. 아이들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내가 보기엔 잡곡밥과 영양소가 골고루 든 집밥 같은 반찬이 반갑고 미더웠다. 그렇게 제대로 된 한 끼의 건강한 밥이 전업주부가 아닌 나 같은 엄마에게는 얼마나 소중한지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집밥을 만들고 소풍 때는 새벽부터 김밥을 말곤 했지만, 주부와 전업작가로 겸업을 했던 나는 잦은 마감 때문에 끼니를 잊고 작업실에서 집필에 몰두할 때가 많았다. 초등학생 어린 아들이 저녁에 배고프다고 전화하면 어쩔 수 없이 원하는 피자나 치킨을 자주 시켜주곤 했다. 중학생인 딸아이는 학원의 쉬는 시간에 잠깐 나가 편의점의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우곤 했다. 지금도 아들은 며칠에 한 번은 꼭 치킨을 먹는 치킨 마니아인데, 그게 다 내 잘못인 것 같다. 내가 전업주부인 친구들에게 어느 날 그렇게 털어놓으니, 자기네 애들도 마찬가지라 했다. TV 채널마다 온통 ‘먹방’에 맛집 천지인데, 요즘 누가 집에서 삼시 세끼를 다 해먹냐고.

영양교사들은 학교급식법 시행규칙을 따르면서 식단을 짜야 한다. 먼저 전통 식문화 계승과 발전을 고려해야 한다. 여기에 곡류 및 전분류, 채소류 및 과일류, 어육류 및 콩류, 우유 및 유제품 등 여러 종류의 식품을 골고루 써야 한다. 가급적 자연식품과 계절 식품을 써야 하고 다양한 조리 방법을 활용해야 한다.

이렇게 믿을 만한 이상적인 식단을 짜는 일 이외에도 그들은 식재료 검수부터 조리·배식 관리, 영양 관리 및 급식 지도, 조리원 위생·안전교육과 같은 기본적인 업무에다 식재료 회계정산, 조리원 근무관리, 식재료 품의 및 입찰 관련 업무 등 여러 가지 업무를 수행한다. 그런데 사실 음식 맛은 실제로 조리하는 여러 명의 조리사의 손에 달려있으니 급식의 질이 영양사 혼자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도 없는 일이다. 게다가 무더운 한여름에는 집단 식중독이라는 두려운 복병도 늘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결국 모든 책임을 혼자 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 영양교사나 영양사의 자살이 몇 년간 끊이지 않고 있다.

아이들의 여름방학, 연일 무시무시한 폭염이 들끓고 있다. 먹는 사람도 힘들지만 먹이는 사람은 얼마나 더 힘들 것인가. 이런 날은 엄마도 부엌을 포기하고 싶어진다. 엄마들에게 묻고 싶다. 매일 남의 자식을 먹이기 위해 땀 흘리며 건강과 영양을 고민하는 ‘급식실의 엄마’보다 자신의 자식에게 삼시 세 끼 더 완벽한 집밥을 먹이고 있는지.

 

권지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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