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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고 없는데 日 추가 규제 걱정”…'백색국가' 제외에 속타는 기업

, 日 '경제 보복'

입력 : 2019-08-29 06:00:00 수정 : 2019-08-28 23:2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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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백색국가 제외 첫날 표정 / 사태장기화 불확실성 확대 우려 / 악재 따른 피해 최소화 안간힘 / 정부, 소재·부품·장비 5조 투자 / 삼성, C&B 불화수소 상용화 논의

일본이 예정대로 한국을 전략물자 수출 우대국인 ‘백색국가’에서 제외한 28일 삼성전자 모 임원은 충남 금산의 화학·플랜트업체인 C&B산업 관계자와 무릎을 맞댔다. 이 업체는 6년 전 일본산 불화수소보다 순도가 높은 초고순도 불화수소를 자체 개발, 특허까지 출원하고도 비용 등의 문제로 상용화를 포기했다. 불화수소는 일본이 대한(對韓) 수출 규제 품목으로 지정한 반도체 공정의 핵심 소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 소재를 국산화하거나 일본이 아닌 수입선을 찾기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삼성전자는 C&B가 개발한 불화수소의 상용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규제 근거인 일본의 개정 수출무역관리령이 시행되자 국내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업계에서는 한·일 무역갈등 장기화에 따른 불확실성 탓에 가뜩이나 침체된 한국 경제의 미래가 더 어두워졌다고 우려했다.

 

이미 일본의 수출규제를 받고 있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업계는 긴장감에 휩싸였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추가 제재 등 구체적인 것이 나와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재고가 소진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미 규제 대상에 포함된 3개 품목에 대한 규제가 더 강화될 수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업계는 일본산 소재의 대체품을 찾기 위한 국내외 소재 테스트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시간이 문제다. 또 다른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국내외 소재 테스트가 진행되고 있지만 시간이 필요하고 실제 상용화할 수 있다는 결과가 도출된다는 보장이 없다”고 전했다.

 

일본 의존도가 높은 자동차 부품·소재 협력업체들도 안절부절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부품 국산화에 성공한 완성차업계와 달리 부품·소재 협력업체들은 아직도 일본 의존도가 높다”면서 “일본산 품목의 수출에 제동이 걸리면 연쇄 파장이 생겨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전략물자로 지정한 제품들이 많은 공작기계 관련 업계는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울산 북구 이화산업단지에서 열린 현대모비스 친환경차 부품 울산공장 기공식 참석에 앞서 전기자동차 코나EV의 배터리 시스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울산=청와대사진기자단

한국무역협회는 이날 논평에서 “일본 정부의 조치는 외교적 사안을 경제적 수단으로 보복한 것으로 한국은 반도체를 포함해 정보기술(IT), 자동차, 화학 등 주요 산업에서 생산 차질이 예상되고 일본은 3대 교역국인 한국을 견제하느라 수출산업에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면서 유감을 표명했다.

 

정부는 소재·부품·장비 연구개발(R&D) 투자·혁신대책을 확정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정부는 이날 확정한 ‘소재·부품·장비 연구개발 투자 전략 및 혁신대책’을 통해 R&D를 지원하고 진행을 총괄하는 민관 합동조직을 신설하기로 했다. 또 산학연(기업·대학·연구기관)의 연계를 강화하는 등 국가적 연구 역량 결집에 총력을 다할 계획이다. 정부는 우선 핵심품목(100α)을 선정한 뒤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산·학·연 전문가로 구성된 ‘소재·부품·장비 기술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핵심품목은 ‘국내 기술 수준(역량)’과 ‘수입 다변화 가능성’을 기준으로 △글로벌화 목표 기술개발 △대체품 조기투입 기술성숙도 향상 △우리 주도의 새로운 공급망 창출 △공급·수요기업 상생형 R&D 추진의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투자를 진행한다. 단기적으로는 향후 3년간 5조원 이상을 투자하는 한편 중장기적으로 R&D 제도 개편 작업도 추진한다.

 

◆日 조치 의미·韓 대책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28일 한국을 수출심사 우대국(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 수출무역관리령을 강행했다. 지난 4일 3가지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에 이어 2차 경제보복조치를 단행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날 한국을 통관 절차에서 간소화 혜택을 주는 ‘그룹A’(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 조치에 대해 “안전보장의 관점에서 우리나라 수출 관리를 적정하게 실시하는 데 필요한 운용을 고친 것”이라고 말했다. 자국 내부절차일 뿐이고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가 아니라는 기존 입장을 반복한 것이다.

 

당·정·청 대책위 회의 청와대 김상조 정책실장(오른쪽 두 번째)이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일본 수출규제 대응 당·정·청 상황점검 및 대책위원회’ 2차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가 장관은 이어 한국 정부에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시정조치를 하라고 말했다. 백색국가 제외와 강제동원 문제와 연관성이 없다는 억지주장을 스스로 뒤집는 이율배반적 발언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한·일관계의 최대의 문제는 구한반도출신노동자문제(일본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의 강제성을 얼버무리기 위해 사용하는 표현)”라며 “이를 포함해 한국 측이 부정적이고 비합리적인 움직임을 계속하고 있어 상당히 엄중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일본)로서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일관된 입장에 기초해 계속해서 한국 측에 현명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해 갈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에 따라 한국에 전략물자를 수출하는 일본 기업들은 앞으로 개별 허가를 받거나 일반 포괄 허가보다 훨씬 까다로운 특별 일반 포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강력 반발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일본 수출규제 대응 상황점검 및 대책위원회 2차 회의를 열고 소재·부품·장비 공급망 조기 안정과 상용화를 위해 내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정부 예산 5조원 이상을 투입하기로 했다고 민주당 윤관석 정책위 수석부의장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당·정·청은 이를 위해 제품·원료의 일본의존도 및 국내 기술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연구개발(R&D) 대응이 필요한 우선품목 100개+α(플러스알파)를 4개 유형으로 선별해 진단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오는 12월까지 완료하기로 했다. 핵심 전략품목의 조기 기술 확보를 위해 추가경정예산 사업 지원 대상 품목·기업을 신속히 확정하고,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가 확정된 1조9200억원 규모의 3개 R&D 사업을 조속히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날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일본 수출규제 대응 확대관계장관회의’에서 “우리는 일본의 부당한 경제보복조치를 바로잡기 위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차질없이 진행할 것”이라며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특정국가 과잉의존을 확실히 탈피하고 그 과정을 업계와 함께하겠다. 업계의 협조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日 경제산업상 회견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이 27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국 백색국가 제외 정책을 28일부터 실행한다고 밝히고 있다. 도쿄=AP연합뉴스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은 한국 정부가 WTO 제소를 추진하는 데 대해 반발했다. 세코 경제산업상은 이날 도쿄에서 기자단에 “(화이트리스트 국가)제도를 도입한 세계 국가들은 화이트리스트 국가로서 우대 조처를 일본에 하고 있다. 한국만이 (일본을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하는 조처를 취하고 있다”면서 “어떤 형태로 제소한다는 것인가. 조금 생각을 묻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의 WTO 제소 움직임을 비꼰 것으로 보인다.

 

한편 조세영 외교부 제1차관은 이날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시행한 데 대해 항의했다. 조 차관은 이번 조치는 강제동원 판결 문제에 대한 명백한 무역보복이자 한·일 간 협력관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중대한 도전이라고 지적했다.

 

이우중·김준영·이현미·홍주형 기자, 도쿄=김청중 특파원 lo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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